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힘이 부치는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나에게 있었다. 적정거리를 무시한 나. 그래서 종일 힘들었던 것이다.
집에서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대부분은 아이와 나의 적정거리를 무시하고 선을 넘어섰을 때이다.
내가 낳은 아이이지만 결코 내가 아닌 존재. 독립된 인격체. 영유아기를 벗어난 학령기이므로 더욱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자꾸 내 뜻대로 조정하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으로 인하여 불화가 생겼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바쁜 나는 아이에게 서둘러서 무언가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저녁에 퇴근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양치했니? 알림장 확인했니? 숙제는? 문제집은 풀었어?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통보가 주를 이룬다. 나의 통보에 아이는 즉각 행동하지 않는다. "5분 후에, 잠시 후에"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나는 갑작스레 화를 낸다. 나의 지시사항에 따르지 않아서 내 말을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 올바른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엄마가 잘 챙기지 못했다는 평가가 두려워서(실제 타인이 그러한 평가를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항상 시간에 쫓겨서 사는 습관 때문에. 할 일 먼저 끝내고 나서 자유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 때문에. 잠시 후에 하겠다는 아이 대답에 "그래"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아이가 늦어서 곤란한 상황이 된다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점점 나아질 터인데 말이다. 느긋한 사람은 느긋한 대로 급한 사람은 급한 사람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아이의 성향을 무시한 채 나의 기준을 강요하고, 함부로 발을 담가 우리 둘의 감정만 휘저어 버렸다. 적정 선을 침범하여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하나는 동료의 성향이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내 기준으로 오늘까지 마감하기를 종용한다거나 내 스타일의 완성본을 기대하였는데 그렇지 못하였을 경우 주로 화가 났다. 왜 저렇게 함흥차사야? 도대체 언제 끝내려고 그래? 이게 보고서야 뭐야? 빈수레네.. 집에서처럼 대놓고 화를 낼 수 없어 겉으로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고 속으로는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나와 다른 업무스타일의 동료를 보면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내 기준을 중심점으로 했기 때문이었겠지. 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였을 때 무능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했겠지. 성격, 가치관, 성향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수행하면 그만이다. 옳은지 그른지, 우수한지 미흡한지, 효과가 좋을지 나쁠지, 중요한지 사소한지는 주관적일 수 있다. 내 영역이 아닌 부분에 내 잣대를 들이대며 관여하려 한 내가 문제였다. 사심 없이 핵심만을 피드백할 자신이 있으면 검토의견을 주고, 감정 실려 말할 것 같으면 피드백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상처만 될 뿐이다.
집에서건 회사에서건 내가 선배(나이 많고, 이곳에 오래 머물러왔고, 먼저 머무르기 시작했고)라는 이유로 나의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강요하며 무법자처럼 선을 넘어선 것이 갈등과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이래서 꼰대가 되나 보다..) 나의 생각, 나의 성향과 일치하느냐 불일치하느냐를 체크하지 말고 각자를 인정해야 했던 것이다. 나의 기준이 원칙이고 표준이라 생각했던 오만함, 관심과 참견을 구분하지 못했던 무지함을 반성하며아이와 회사동료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람마다의 고유영역을 침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뛰어난 부분이 많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긍정적, 차분함, 낙천적, 효율적, 추진력, 사교적, 꼼꼼함, 포용적, 섬세함.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잘하는 부분, 내가 배워야 할 부분 찾아보기가 먼저이고, 이를 칭찬하고 존중하며 인정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