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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Oct 16. 2024

봄이 와서 - 두 번째 이야기

[가을이 2.]

입을 옷이 하나도 없어!

이건 너무 타이트해. 이건 너무 와이드해. 이건 캐릭터가 유치해. 색깔이 이게 뭐야. 목부분이 맘에 안 들어. 스트라이프가 너무 넓어. 허리가 커. 길이가 애매해. 핏이 구려. 이건 이번주에 두 번이나 입었어. 롱스커트가 딱 예쁜데 맞춰 입을 윗옷은 하나도 없어.

아... 뭘 입고 학교에 가라는 거야? 엄마는 내 옷에 관심이 하나도 없어.

봄이 옷은 옷서랍 중 두 칸을 차지하고도 남아서 박스에까지 담아놨으면서 내 옷은 이게 전부야!

그런데도 엄마는 옷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옷투정 하느냐고 나만 타박해. 옷이 있으면 뭐 하냐고. 입을 옷이 있어야지. 내 스타일의 옷이 있어야지. 엄마는 정말 몰라도 너무 몰라. 내가 얼마나 속상한 지 하나도 몰라. 

다른 친구들은 트렌드에 맞게 딱딱 맞춰서 간지 나게 입고 다니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스타일이 하나가 돼야지. 아래는 캐주얼하고 위는 블링하고 이러면 안 되잖아. 색도 그래. 파스텔톤으로 가든지, 화이트&블랙, 올 블랙, 이렇게 입어야 하는 거잖아. 음식도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이 다르잖아. 옷도 당연히 그런 거잖아.  

작년에 잘 입었던 옷을 올해는 왜 안 입느냐고? 엄마는 매년 똑같은 옷을 입으시는데 나는 왜 그렇지 않냐고 물으시면 곤란하지. 나는 패션이 아주 중요하고 엄마는 패션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니까. 아무튼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란 말이지. 어떻게 작년에 자주 입었던 옷이 올해도 좋을 수가 있냐고? 내가 키가 쑥쑥 크면서 취향도 달라지는걸. 여하튼 나랑 엄마랑은 엄연히 달라서 나는 그럴 수 없어!

친구들은 세련된 체크스커트 입고 오는데 나만 한참 유행 지난 레이스스커트 입으면 얼마나 창피한데.

내가 외동딸이었으면 옷이 이렇게 적지 않았겠지. 내가 원하는 거 많이 사주실 테니까. 그나저나 오늘 뭐 입지?..ㅜ.ㅜ 아침부터 정말 망했어...




[봄이 2.]

엄마. 언니는 사춘기가 확실한 것 같아. 그치?

오늘 아침에도 입을 옷이 없다면서 30분 동안 옷만 고르다가 결국 월요일에 입었던 옷으로 입고 갔잖아. 언니는 요즘에 계속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투덜하다가 짜증 내다가 화내다가 그래. 그럴 때 나는 언니가 무서워..

그리고 나는 옷이 많은데, 언니는 옷이 없다고 막 그랬어. 엄마, 근데 내 옷은 모두 언니가 물려준 옷이잖아. 그러니까 내 옷은 모두 헌 옷이고, 언니 옷은 모두 새 옷이고. 그러니까 내가 옷이 많은 것은 예전에 언니 옷이 많았다는 말이잖아. 근데 언니가 내 옷은 많고 자기 옷은 없다고 하면서 나랑 비교할 때 기분이 좀 그랬어.. 그래서 언니 옷 물려 입은 거라고 말하려다가 참았어. 그러면 언니가 더 화낼 것 같아서.

그리고 우리 둘이 싸우면 엄마가 힘들 거고.

엄마 나 잘했지? 히이. 엄마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리고 언니 옷들이 모두 예뻐서 나는 좋아. 우리 친구들 중에 내 옷이 제일 예뻐. 친구들 옷은 어린이옷 같은데 내 옷은 언니들 스타일이라서 친구들이 부러워해. 그래서 기분이 좋아. 히이. 

, 나는 옷이 많으니까 내 옷은 안 사줘도 돼.

언니옷만 사줘도 나는 진짜 괜찮아.  히이.




[엄마 2.]

아이고 기운 딸려.. 오늘 아침은 무사히 지나가나 했더니만 역시 나네.. 요즘 옷 투정이 왜 이렇게 심한 거야. 지난번에 계절 바뀌면서 6개 사줄 때는 아주 신이 나서 이제부터 옷 얘기 안 하겠다고 선언하더니 3주를 못 버티네.. 아니 무슨 새 옷이 3주도 마음을 못 사로잡아? 3주 전까지만 해도 그 옷이 최고라더니 하루아침에 그 옷은 아니라고 그러니. 정말 그 변덕을 못 따라가겠네. 누굴 닮아서 도대체 그러는지.. 휴우..

이렇게 예민하지 않던 아이인데 갑자기 달라지니까 걱정이네.. 이럴 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옷을 새로 사줘야 하는 거야 그냥 지켜봐야 하는 거야. 어렵네 어려워. 시어머니 마음보다 더 어려워..

봄이는... 봄이가 언니 같아. 엄마 속상할까 봐 엄마 걱정 먼저 하고, 언니한테 양보하고 배려 잘하고. 그럴 때면 막내스럽지가 않아서.. 의젓하다고 해야 하나  눈치 본다고 해야 하나.. 더 맘이 쓰이네..

가을이는 가을이대로 봄이는 봄이대로.. 내가 내 자식들을 제대로 안다는 건 무엇일까?.. 내 그릇이 아이들을 보듬어주기 좁은 건 아닐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일까..


(*초록담쟁이의 아름다운 날들 사계절 컬러링북을 색연필로 색칠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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