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만큼 일할래요"... 청년, '조용한 퇴사'에 빠지다
'조용한 퇴사'는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진 않지만 '자신이 맡은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직장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을 거두고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안에서만 일하겠다는 태도인데, 심리적으로 '퇴사에 가까운 마음가짐'을 갖고 회사 생활을 하겠다는 뜻이다.
<< 한겨레, 2023.4.27 >>
'조용한 퇴사' 기사를 2022년 봄에 처음 만났다. 그 당시 과도한 업무에 허덕이고 있던 나에게 '조용한 퇴사'라는 단어는 하늘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계속 이렇게 일하다가 너 죽어. 너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하지 마. 네가 안 한다고 해서 너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맡은 일 제대로 못하거나 제대로 안 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슨 영달을 누리겠다고. 무슨 정의감에 불타서 노예처럼 살고 있는 거야?..'
피폐해져가고 있는지 조차도 모른 체 그렇게 하루종일 일만 일만 하고 있는 나에게 '조용한 퇴사'라는 신조어는 번아웃을 막아주기 위해 등장한 구세주와 같았다. '나의 에너지 100을 회사에 쏟는 것은 옳지 않다. 아이들과 보낼 에너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나에게 Quiet Quit은 생존 요소였고 적정선에서 멈추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조용한 퇴사'는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데 조용한 퇴사는 새로운 세대만의 특성일까? 예전부터 계속 존재해 왔던 현상은 아닐까? '조용한 퇴사' 관련 글을 읽다 보면 '파레토법칙'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파레토 법칙 : 전체 직원의 20%가 전체 업무량의 80%를 처리하여 성과의 대부분을 만들어낸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계속 그러하다. 조직 내 구성원을 바라볼 때 역량과 성품이 중요한 2개의 요소인데, 이중 역량만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4개의 유형으로 구분되어 보였다.
(1 유형) 담당 업무+알파 업무 처리함. 상 난이도(중요도) 일을 담당.
(2 유형) 담당 업무 처리함. 중 난이도(중요도) 일을 담당.
(3 유형) 선택적으로 담당 업무 처리함. 중하 또는 하 난이도(중요도) 일을 담당
(4 유형) 담당 업무에서 자유로운(거부하는) 사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사람.
조직은 주로 1유형을 핵심인재로 지정하고 중요 일을 부여했고, 4유형에게는 일 맡기기를 주저했다. 1유형은 큰 기둥을 차지하여 조직을 먹여 살리는 사람. 2,3유형은 내 몫을 담당하는 사람. 동료에게 폐 끼치지 않는 사람. 이 2,3유형이 현시대에서 조용한 퇴사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1유형이 조직을 먹여 살리고 있는 능력보유자로 멋져 보였고, 4유형은 한심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1유형은 안쓰러웠고(과로&피로), 4유형은 편안해 보였다(여유로움). 특히 1유형이 고생한 대가를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기 시작하면서 사회생활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실력 이외에 필수적인 무언가의 또 다른 능력을 갖춰야 하는구나. 보상받지 못한 1유형은 이용당해서 배신감 들고, 회사에 열과 성의를 다하느라 가족과 건강을 챙기지 못해서 참 속상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4유형의 사람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저분은 회사에서만 이런 모습이실까? 회사 밖에서는 다른 모습도 있으실까? 살아가는 자세가 회사에서 뿐 아니라 매사를 대충 살고 계신다면 충격적이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가벼워.
조용한 퇴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의견이 다양한데,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생각은 [문제로 지적하기보다 함께 변화하고자 손 내미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이다. 어느 누구도 손해 보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기성세대든 젊은 세대든. 그러니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이해해 달라 할 수는 없다. 조직은 직원이 원하는 보상, 업무 배분, 효율화, 공감대 형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나를 생각해 보고, 직원은 받는 월급에 대해 내가 적정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살았어'라고 과거가 당연하며 정상적인 것인데 거기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고 못마땅해하지 말고. 난 1도 손해보지 않을 거야라고 정색하지 말고.
회사는 직원을 채용할 때 신중하게 선택한 만큼 그 후에도 구성원을 향한 세심한 관심과 고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원도 입사 지원 시 포부와 각오가 있었을 터, 입사 후에도 그 마음을 생각해 보며 생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머무르는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인생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생각해 보았다.
말이 그렇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롱테일법칙이 주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롱테일법칙 : 80%의 비핵심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
80%가 함께 한다면
덜 힘들고, 덜 외로울 것 같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 더 많아질 것 같고,
더 많은 사람이 자기 효능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사는 세상은 조직에서 자의든 타의든 소외되는 사람도 없고 책임을 외면하는 사람도 없는 각자의 재능을 펼치며 사는 즐거운 곳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