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芒種)이 지났다. 초록으로 물들어 유월의 바람에 살랑대는 나뭇잎들이 더없이 풍성하고 힘찬 계절이다. 산길을 걷다 보면 단연 눈길을 끄는 나무가 있다. 오솔길 군데군데 뻗어 나온 가지마다 크고 넓적한 나뭇잎을 잔뜩 매달고 한껏 기세를 떨치는 떡갈나무다. 시선이 머무는 건 나무가 곧거나 잘생겨서가 아니라 오로지 넓적하고 두꺼운 ― 솥뚜껑을 연상시키는 ― 나뭇잎의 크고 사나운 생김새 때문이다.
거울 보기를 좋아했다. 재직 시 언제나 책상 위 한편에 거울을 놓아두고 수시로 들여다보았으며 이동할 때도 우선순위로 챙기는 필수품 중 하나였다. 점차 거울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정년퇴직을 하고 일흔을 넘기고 나서부터 두드러진 양상이다. 아무리 들여다보고 뜯어봐도 눈주름과 팔자주름, 목주름 등이 사뭇 어색하여 낯선 느낌이 들었음이다. 아니 스스로 초라해진 모습이 영 딱하고 민망했음이기도 하다. 때로는 자신의 얼굴이 아닌 아버지나 형의 얼굴이 문득문득 보이기까지 한다.
아픈 추억도 있다. 우연히 서랍을 뒤지다가 읽게 된 딸아이의 묵은 편지가 그랬다. 중학교 1학년 딸아이는 사십 대 중반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두 장의 편지를 썼다. 하나는 어렵게 용돈을 모아 장만한 화장품 세트에 곁들여 가정의 소박한 행복을 비는 내용이었고, 또 하나는 술좌석 때문에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친 서운함과 원망을 고스란히 담은 ― 설레며 꾸민 정성이 물거품 된 ― 소회를 가감 없이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준비한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어 반절을 먹었다는 애교 섞인 마지막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읽은 기억조차 아슴아슴하기만 한데 늙은 가슴은 새삼 혼자 따갑고 맵고 아리다.
빚진 마음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하나의 상념이 가슴 한편을 짓누르는 것이다. 너무 일찍 타계를 하신 안타까움과 어린 자식들을 위해 감내하신 쓰라림이 고스란히 점철되곤 했음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불화가 생긴 건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어린 동생들을 염두에 둔 아버지는 어머니와 화해하기로 의중을 정했으면서도 ― 밤늦게 귀가하는 오일장마다 ― 자갈투성이의 신작로에서 미루나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삼키셨다. 고향을 떠날 때까지 이어진 아버지의 오일장 마중은 온전한 내 몫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스물일곱 되던 해 한여름, 마흔여덟 젊디젊은 한창나이로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와 갈등이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좀 더 오래 사셨을까. 지난해 겨울 초입 이승을 등지신 어머니를 아버지 옆에 안장하면서 문득 미켈란젤로(Michelagelo)의 천지창조, 아담(Adam)의 창조를 떠올렸다. 여태껏 닿을 듯 말 듯 멈춰선 두 검지가 하얀 뭉게구름 속에서 어우러진다. 아버지를 대신한 아주 오래된 화해였다. 그러면서도 속내는 안타깝고 울적하기만 하다. 술로 분(憤)과 시름을 달래던 아버지는 극도로 쇠약해져 임종 즈음 거의 병석에 누워 지내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무슨 사무가 그리도 바빴던지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제대로 사드렸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이형기(李炯基) 시인의 시(詩) ‘낙화’ 부분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난날을 돌아본다. 시인의 말처럼 때를 알고 돌아선, 아름다웠던 뒷모습의 기억이 놀라울 만큼 없다. 애써 합리화시켜 보아도 겨우 한두 번에 그칠 뿐, 언제나 방황과 고뇌를 거듭하여 누더기가 되도록 가슴앓이를 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나름 오기가 있어 그 시간이 길지 않았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하겠다.
헬렌 켈러(Helen Keller)가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밝힌 심경이다. 첫날에는 앤 설리번(Anne Sullivan) 선생님의 얼굴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고, 둘째 날에는 새벽 먼동이 트는 모습과 영롱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싶다고 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고, 점심때에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때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 상품을 구경하고 ― 집에 돌아와 ― 사흘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감상이 저려 올 뿐 감동은 없다. 모두는 그렇게 세상 밖 일이 되어 가고 있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세상을 보고 싶다는 절절하고 순박한 소망도 아주 당연한 듯이 ― 그것도 시니컬하고 권태에 찌든 표정으로 ―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만큼 세월 속에 감성이 무뎌지고 인성이 메말라진 탓일 것이다. 그래, 이제 정말 나는 늙었구나. 얼굴과 몸뿐만 아니라 생각과 머리, 속가슴 세상이 돌연 막바지 가을 절기인 상강(霜降)을 맞은 것 같은 황량함이다. 거울 들여다보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 꼭 그만큼 눈앞에서 가슴속 만상이 멀어지고 있다.
청명(淸明) 즈음하여 나뭇잎의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 그 연두색 움들은 꽃잎보다도 연하고 부드럽다. 그중에서도 아기의 손톱을 연상시키는 떡갈나무 새순은 특히나 연약하고 애처로워 그야말로 바라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질 정도다. 그처럼 여리디여린 떡갈나무의 순이 유월의 태양 아래, 솥뚜껑마냥 넓적하고 두꺼운 형태로 변모할지 그 누가 상상인들 했겠는가.
볼테르(Voltaire)의 소설 캉디드(Candide)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어떠한 경우에도 ―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 모든 것은 항상 최선의 상태에 있다는 예정조화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말하자면 라이프니츠(Leibniz)의 낙천주의 학설에 경도된 극단적 낙관주의자다. 온갖 사회적 타락과 부정, 불합리에도 “지금 우리는 우리의 뜰을 경작해야 한다.”라는 순진한 도취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비가 쏟아진다. 산천을 흔드는 장대비다. 빗방울은 나무를 축이고 땅을 적시고 황톳물이 되어 검불과 흙먼지를 싣고 흘러간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머물고 흙무더기를 만나면 빙 돌아서, 초조해하거나 허둥대지 않고 곁눈질로 훔쳐보거나 쑥스러워하지 않으면서, 내(川)를 찾아 거북이걸음으로 유유자적 흘러간다.
그렇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더욱이 노년의 삶이 빗물 흘러가는 일이랑 무엇이 다르랴. 솥뚜껑같이 변한 떡갈나무 잎도, 얼굴이 거울에서 멀어진 이유도, 새삼 혼자 맵고 아린 속가슴도 왜냐고 따져 묻지 말자. 설령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헬렌 켈러의 간절함이 없더라도, 설핏설핏 감상에 빠져들고 무력감에 잠기더라도 캉디드의 최고의 선(善)을 향한 지족의 마인드에 동참 매일매일을 하루인 양 마음의 뜰을 가꾸어 가자. 종심(從心)의 나는 오늘도 빗물처럼 흘러가는 중이다.(월간자유 25년 6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