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사랑과 열정은 꿈꾸듯 아름답다. 더구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는 새드 엔딩(sad ending)의 경우 그 처염함의 여운은 아주 더 오랫동안 가슴속에 머물러 애잔함을 더한다. 희곡 속 로미오(Romeo)와 줄리엣(Juliet)이 그러하고, 영화 타이타닉(Titanic)의 잭 도슨(Jack Dawson)과 로즈 드윗 부카더(Rose Dewitt Bukater)가 그러하며, 백 년 전쟁의 잔 다르크(Jeanne d’Arc)가 역시 그러하다. 작중(作中)과 역사 속 그들의 나이는 로미오가 17세, 줄리엣이 13세, 잭 도슨이 20세, 로즈 드윗 부카더가 17세, 잔 다르크가 16세로 막 꽃봉오리가 벙글어 만개를 앞둔 시점이었다.
소년 시절 한 지점을 떠올려 본다. 거기에는 아득한 세월 건너 생각만으로 ― 자신도 모르게 ―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지면서, 가슴이 절로 두근거리고 남몰래 얼굴이 붉어지는 달콤함이 숨어 있다.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해 준 적이 없는, 꽁꽁 숨겨 둔 혼자만의 속비밀이다. 그때 나는 마치 왕(王)이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했고 온 누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양 황홀하기까지 했다. 마음이 풍선같이 마냥 부풀어 올라 눈부신 햇살도, 찬란하게 팔랑이는 초록빛 나뭇잎도, 굴뚝에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도, 지팡이 짚은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도, 심지어 길가에 널브러진 개똥마저도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성물이라도 되는 듯 정겹고 다정하고 친절하게 보였다. 돌부리에 걷어차여도 당연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소녀를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60년대 말 당시만 해도 대구 동촌 유원지를 지나는 금호강(琴湖江)은, 겨울이 되면 꽝꽝 얼어붙어 아주 훌륭한 천연 스케이트장으로 탈바꿈하곤 했다. 강가 양쪽으로 스케이트 대여점과 어묵(おでん)을 파는 천막 등이 줄지어 들어서고, 강 중앙 쪽에 두어 군데 둥근 트랙(track)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집에서 상당한 거리임에도 혼자 금호강을 찾은 데에는, 중학교 시절 시골에서 익힌 스케이트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채 그럴듯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맨 먼저 앳된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풍성한 잿빛 스웨터에 둘러싸인 단발머리의 작고 흰 얼굴이 마치 보석마냥 반짝였다. 소녀는 겨우 걸음마를 벗어난 수준이어서 트랙 바깥쪽을 어정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손을 잡아 주자 두 눈이 활짝 벌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고 강바람을 휘저으며 ― 얼음이 녹을 때까지 ― 겨울 방학을 보냈다. 가끔은 포장마차에서 입김을 후후 불며 뜨거운 어묵 국물을 마시기도 했는데, 부서져 내리는 환한 햇발과 눈빛 얼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 늦가을 저녁 무렵이었다. 기억마저 흐릿하기만 한데 소녀와 나는 금호강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하나둘 떨어져 내리는 강둑길을 따라 걷다가 풀밭에 나란히 앉아 석양에 물드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금방 어둠이 내려앉은 강둑은 멀리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등대처럼 깜빡거렸고, 풀벌레 소리 사이로 한두 사람이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간혹 들릴 뿐 사방이 조용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그토록 오랫동안, 서너 시간 넘게 앉아 있었는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파우스트(Faust)의 마지막 명대사 “멈춰라! 순간이여,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구절처럼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로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련의 몸짓들은 ― 멈춰 세워 영원으로 새겨 두고 싶을 만큼 ― 저릿하고 감미로운 환상의 순간들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첫새벽 산행 길 그믐달을 본다. 동쪽 하늘 산등성이 위 나지막이 내려앉은 그믐달이 처연하면서도 의연하고 단정하다. 산길 낙엽에 부서져 밟히는 그믐 달빛은 꽤나 밝은데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턱을 괸 채 꾸벅꾸벅 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따금은 유유자적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놀잇배 같기도 하고, 때로는 비우고 내려놓은 해탈(解脫)의 항해인 양 거룩해 보이기까지 한다. 해가 뜨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관측이 어려운 그믐달은, 사위어 소멸된다는 동류의식이 노년의 자화상을 닮은 측면도 없지 않아 잔잔한 아쉬움이 쉬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른 아침 체육공원이다.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빙 둘러서서 리더의 구령에 맞춰 맨손 체조를 한다. 등배 운동을 하는데 모두 하나같이 손은 무릎에도 내려오지 않고, 허리는 아예 굽신조차 안 하는데 목만 저 혼자 까딱까딱한다. 그럼에도 너나 할 것 없이 진지하고 만족스러운 표정들이다. 딴에는 손이 땅바닥에 닿고 젖혀진 허리가 둥근 활처럼 휘어지는 상상을 하는 듯했다. 마음은 훤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노인들만 모르는 노인들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제아무리 치장을 하고 잰 척해 봐도 젊은이들에게 그들은 ― 일률적이지는 않으나 ― 피부는 탄력을 잃고, 행동은 굼뜨고, 말은 어눌하고, 사유가 경직된 고집 세고 불편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이십 대 후반 직장에서의 일이다. 정기 조회 등 모임 때면 선임들이 ― 대체로 사십 대 중후반에서 오십 대 초반 대였다 ― 삼삼오오 모여 객담을 주고받았는데 주로 성적(性的)인 농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고소를 넘어 허무를 느낄 때가 많았다. ‘저 나이에 사랑이 가당치나 할까?’하는 ― 사랑 자체를 젊은층의 전유물로 단정한 ― 비하가 깔린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폭 좁은 사고 영역에 매몰되었던 젊은 시절의 나는 세간 물정에, 인간사에 그 얼마나 무지하고 어두웠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른에는 도전하는 로미오가, 쉰에는 열망하는 로미오가, 일흔에는 꿈꾸는 로미오가 ― 비록 조도는 엷어지고 강도는 약해졌지만 ―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아채기는 했지만 말이다.
소년의 사랑과 열정은 강렬하고 무모하기까지 하다. 시야가 좁아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얽매이는 곳이 없어 걸림이 없으며, 죽음과 소멸에 대한 관념이 아직 굳어지지 않아 이해타산 등에서 극히 자유스러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순백의 순수, 지고지순(至高至純)의 힘이다. 거기에 비해 종심(從心)의 나는 얼마나 제약이 많은가. 시선은 분산되어 모아지지 않고 걸리는 곳이 여기저기 비일비재하며 약화된 집중력은 순전한 몰입을 방해한다. 분초를 다투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속성(俗性)은 스스로의 목에 억압의 밧줄을 걸고 다니는 형상과 또한 다름없다.
조동화(曺東和) 시인의 시(詩) ‘나 하나 꽃피어’ 부분이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맞는 말이다. 일흔의 내가 다시 로미오가 된다고 해서 어떻게 세상이 달라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와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로 일흔의 로미오가 되고 새로이 일흔의 줄리엣이 된다면 그만큼 더 밝고 더 눈부시게, 더 정겹고 더 친절하게 커뮤니티(community)는 온기와 미소와 생기를 더하지 않겠는가. 그래, 현실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한 방울의 물로 사막을 모두 적실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물이 없으면 사막을 다 적실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이후 나는 살아 있는 동안 ― 가슴속으로나마 ― 언제나 일흔의 로미오를 꿈꾸며 세상을 바라보겠다.(월간자유 25년 7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