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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 Apr 19. 2022

고난을 이겨 낼 기회를 제공하자

고난 극복 성장기를 보고

오늘은 가족 넷이서 안성 *타필드를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에 사과꽃이 팝콘을 닮은 듯 이쁘게 피어 보기 좋았습니다. 봄은 찾아오고 나무들이 물을 머금은 듯 생기가 도는 느낌이 좋아 기분이 전환되었습니다. *타필드에 물건을 찾으러 간 것인데, 놀이터가 있어 1, 2호와 함께 가보았습니다. 2호는 아직 어려 터널처럼 생긴 곳을 아직 지나오지 못합니다. 1호는 반대편 입구를 지나 2호를 만나러 와 신나 보였습니다.

잠시 후, 그녀는 2호와 물건을 찾으러 가고 저와 1호는 계속 놀이터에서 놀았습니다. 평일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남자아이 둘과 잡기 놀이를 하는 엄마는 힘들어했습니다. 왜 내가 여기서 뛰어다니냐 툴툴대면서도 즐겁게 놀아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함께 온 엄마들이 벤치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은 2층에 있는 미끄럼틀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공동육아를 하는 듯했는데, 한 명의 보호자가 아이들 곁에 있고, 다른 분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눈으로는 아이들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1호는 이곳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전보다 좀 소극적으로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사진 형태의 미끄럼틀은 내려가려다 주저하고 돌아섭니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활동이 줄어들어 이렇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적극적으로 놀 수 있게 유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좀 나아져 계단을 올라가 2층에 있는 터널 형태의 미끄럼틀을 내려가며 좋아했습니다. 1층에 내려간 1호는 2층에 있는 아빠를 보며 손을 흔들고 마스크 넘어 웃어주는 게 보였습니다. 잘 놀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1호는 잘 놀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빠가 옆에 있나 확인하는 눈치도 보였습니다. 문을 통과하며 아빠가 보이지 않으면 "아빠 어디 있어?" 하며 찾았습니다. 아빠가 눈에 안 보이니 불안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1호가 슈웅하고 빨리 가버리면 저도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티를 내지는 않아도 다른 아이들과 섞여서 안 보이면 어디 갔지 하며 찾게 됩니다. 5살. 아직 놀이터에 풀어놓고 마음껏 놀거나 놀게 하는 것은 이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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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 두려움. 1호는 신나게 놀면서 이런 감정들을 느꼈던 것일까요?

<고난 극복 성장기>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 콩쥐 팥쥐에서 새엄마의 구박. 아이들을 산속에 버린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 혼자 숲 속 할머니 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빨간 망토 소녀. 호랑이를 만나 어려움을 겪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두려움과 공포의 과정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 이야기에 왜 이런 두려움과 공포가 등장할까요? 심지어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는 조약돌을 보며 집을 찾아온 아이들을 또다시 버리는 매정함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는 대부분 <권선징악>을 주제로 담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흥부와 놀부에서 흥부처럼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놀부처럼 이기적이고 욕심을 부리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권선징악의 의미를 넘어 <융의 심리학>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융의 심리학에서는 신화, 민담, 동화 속에 그려진 원형적 세계를 통해 인간 심층에 내재된 무의식의 원리를 경험하게 한다고 합니다. 부모와 떨어질까 하는 두려운 마음, 홀로 어려움을 겪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 나쁜 사람을 만날까 하는 두려운 마음 등 아이들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두려운 마음을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두려움을 통해 무의식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두려운 상황을 잘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개성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는데요.


개성화 과정은 무엇일까요?

내 안에 있는 어긋난 마음들이 조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결국 자기실현을 하는 과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있는 1호가 보던 전래동화책 <콩쥐 팥쥐>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림자 극장 전래동화로 영사기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던 책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틀어주면 1호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콩쥐네 집에 새엄마가 팥쥐를 데리고 시집왔어 라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고난입니다. 새엄마와 동생의 등장. 새로운 인물들과 갑자기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은 콩쥐를 못살게 굽니다. 새엄마는 콩쥐에게 밭의 자갈을 모두 치우라고 주문합니다. 이것 역시 고난입니다. 일을 하던 중, 콩쥐의 나무 호미는 부러지고 맙니다. 설상가상입니다. 하지만 이때, 검은 소가 나타나 밭을 갈아줍니다. 소가 나타나 주인공을 도와준다는 느낌도 들고, 책을 읽는 아이들은 콩쥐가 소의 도움으로 고난을 잘 해결하는 과정을 보며 다행이라고 느낄 거 같았습니다.

다음으로 새엄마는 콩쥐에게 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주문합니다. 항아리 귀퉁이는 깨져있었고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무리 물을 채워도 불가능한 일을 주문한 것이죠.  더 많이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또 고난이군요. 하지만 두꺼비가 나타나 독에 구멍을 막아줍니다. 그래서 새엄마의 힘든 주문을 해결하게 되죠.

새엄마는 콩쥐가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미션들을 제시했는데 번번이 해결하는 것을 보며 화가 잔뜩 났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또 괴롭히는데요. 새엄마는 벼 껍질을 모두 벗겨놓으라고 시켜놓고 팥쥐와 마을 잔치에 가버립니다. 콩쥐는 혼자 남게 됩니다. 또 고난입니다. 콩쥐는 마을 잔치에 가고 싶었겠지만 벼 껍질을 벗겨야 하니 속상할 거 같습니다. 또 고난입니다. 그런데 참새 떼가 날아와 벼 껍질을 콕콕 벗겨줍니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선녀가 나타나 색동옷과 꽃신을 줍니다. 마을 잔치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니 콩쥐는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고난도 사라지고 마을 잔치도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콩쥐는 마을 잔치에 가던 중, 원님과 마주치게 됩니다. “물러서라! 원님 행차시다!” 소리에 콩쥐는 후다닥 비켜서다가 퐁당, 꽃신 한 짝을 물에 빠트리게 됩니다. 왠지 신데렐라와 비슷한 느낌이죠.. 하지만 둘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님은 꽃신이 참 곱기도 하구나 하며 콩쥐에게 꽃신을 찾아주고, 착한 콩쥐는 원님에게 시집을 가게 되며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그림에 팥쥐와 새엄마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고 반대로 마을 사람들은 웃으며 축하하는 표정들입니다.


<콩쥐 팥쥐> 내용을 살펴보니 권선징악의 주제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착한 콩쥐는 여러 고난들을 이겨내고 원님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새엄마와 팥쥐는 콩쥐를 여러 방법으로 괴롭히지만 번번이 실패하니까요. 새엄마와 팥쥐는 아이들이 자주 보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악당들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헬로카봇에 등장하는 ‘라인 일당’이라고 하면 될까요?


이제, 융의 시선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콩쥐는 생모가 없이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  같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홀로 해결해야 하니 어려웠겠지요. 물론 주변 인물들의 도움으로  해결되어 다행입니다. 책을 읽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마음속에 두려운 마음이 생길  있을  같습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고난을 이겨내야 하니까요. 심한 경우, 밤에 자다가도 무서워 엄마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간접적이지만 고난을 겪게 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고난이 유익한 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아닐까요? 아이들은 두려울 , 울며 부모를 찾게 됩니다. 2호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옆에 아무도 없으면 울며 부모를 찾는 것처럼요. 그리고 아이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 가장 쉽게 해결할  있는 방법은 부모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겠죠. 부모가  일을 도와주면 빠르쉽게 해결되니까요. 하지만 반복되면 다른 어려운 상황이 발생해도 계속 부모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를 키우며 얼마나 도와주며 어디까지 개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때가 많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것을 보면 뿌듯할 때도 많습니다. 항상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부모가 자녀 옆에 있어줄 수는 없습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생활과 사회생활  아이가 점점 독립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생기게 되겠죠. 그리고 뜻하지 않은 고난이 찾아와 상황이 두렵고 버거울 때도 을겁니다. 그런 고난을 통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고난을 이겨낼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도가 심한 고난이 아니더라도 가볍게 이겨낼  있을 그런 기회를 말이죠. 힘들면 옆에서 도와주고 응원하면서 스스로 해결할  있는 기회를 많이 주려고 노력하면서 말이죠. 나중에 부모가 옆에 없는 상황에서 주저앉아 있기보다는 이겨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들의 도움도 받으며 상황을  해결해나갈  있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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