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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 Apr 16. 2022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

숫자들이 사는 나라, 애도 1부 상실의 시대를 보고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녀와 뭐 먹을까 고민을 하며 *달의 민족 어플에 들어가 봅니다.세상은 넓고 맛집은 많다. 그렇죠.

배달을 눌러 확인합니다. 1호도 있기 때문에 먹는 것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메뉴가 정해지면 어느 음식점에서 그 메뉴를 파는지 확인하고 이거 먹을까 하고 그녀에게 물어보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릅니다.

그녀는 일단 별점이 높은 지 숫자를 확인합니다.


4.7

4.8

4.3


그러면 4.8의 음식점을 들어가 봅니다. 아직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리뷰를 들어가 봅니다. 리뷰에는 최근 리뷰 343개. 다 읽어보진 않더라도 10개 정도는 쭉 살펴봅니다. 사진도 보고 리뷰 내용도 읽어보며 어떤 메뉴를 선택할지 정합니다. 역시 신중한 편입니다. 그리고 시킨 음식이 맛있습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별점도 확인하고 리뷰까지 꼼꼼히 읽어봅니다.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며 귀찮게 생각하는 저와 달리 별점과 리뷰를 꼼꼼히 살펴보는 그녀는 선택에 있어 신중한 편입니다.

실제로 음식점에서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별점을 위해 리뷰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거슨 뇌물하며 끼워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콜라 효과처럼 그럼 또 별점을 좋게 주게 됩니다. 음식점은 별점과 리뷰도 관리하며 인지도를 신경 쓰는 분위기입니다.


‘숫자들이 사는 나라’에서도 음식점에 대한 내용이 짧게 나옵니다.


맛, 가격, 포장상태, 친절도, 배달속도.


이 다섯 가지 변수를 고려해서 별점 5개의 음식점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음식점의 예와 같이 숫자는 생존의 조건이고 사람들은 이 숫자를 쫓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뉴욕 타임스에서 창간 40년 만에 처음으로 사진이나 광고 없이 활자로만 1면을 채운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목에는


‘헤아릴 수 없는 손실’


손실이라면 숫자상으로 얼마나 클 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일간지에는 숫자 형태의 금액이 아닌 활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코로나 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를 설명하는 한 줄의 문장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알란 룬드, 81, 워싱턴, 놀라운 귀를 가진 지휘자.


테레사 엘로이, 63, 뉴올리언스, 섬세한 꽃 장식으로 유명한 사업가.


미네티 고프 쿠퍼, 79, 루이지애나 출신, 주변 사람들에게 늘 사랑한다고 말했음.


헤수스 로만 메렌데스, 49, 뉴욕,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서 소고기 스튜 맛있게 끓이기로 유명했음.


왜 그랬을까요?

뉴욕 타임스는

“희생자 그 누구도 단순한 숫자로 표현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1,000명의 이름을 지면에 가득 채웠지만 이것은 미국 내 코로나 19 전체 사망자의 단 1%. 그러면 사망자가 약 100,000명 정도이고 모두 적으려면 100면이 필요하다는 말이네요. 정말 숫자상으로도 많지만, 사망자 수만 보고 그 사람이 누구였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숫자에 다 담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2년 4월 15일 오후 9시 22분.

코로나 라이브를 들어가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확진자 수는 16,104,869명.

사망자 20,617명.

입원환자 1,085명,

위중증자 999명 이라고 나타납니다.

오늘 확진자는 96,782명. 어제나 1주전, 2주전, 4주전에 비하면 감소세입니다.


세계 확진자 수는 503,170,181명.

사망자 6,218,566명.

완치자 453,584,380명.

오늘 확진자는 843,475명. 어제나 1주전에 비하면 감소세입니다.


나라별 확인했더니 미국 사망자 수가 나타났습니다. 1,014,902명.

뉴욕 타임스 보도 당시의 사망자 수가 약 100,000명 정도 였으니 지금은 또 10배 이상의 수치입니다. 뉴욕 타임스 기사는 서울신문 2020년 5월 24일 기사였습니다. 2년 사이에 10배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모양입니다. 숫자상으로도 엄청 많이 발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오늘 코로나 확진자 몇 명이지 하면서 수시로 확인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확진자는 몇 명, 총 몇 명 이런 식으로 안전 안내 문자가 오니 확인을 잘하지 않게 되고 숫자에 무감각해지는 느낌입니다. 숫자가 자꾸 커져서 그런 걸까요?


하지만 통계상의 사망자나 입원환자, 위중증자에 내 가족이 포함되어있다면… 숫자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지 않을까요? 내 가족이 코로나 19로 위중하다, 입원했다, 사망했다라면 정말 다른 상황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2020년 2월 19일 코로나 19로 인한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와 비교해서 2022년 4월 16일 지금은 코로나 확진자 수, 사망자 수에 너무 무감각하게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뉴욕 타임스 일간지에 활자로 된 사망자 1,000명의 이름을 빼곡히 적었다면 국내에서는 ‘애도와 기억의 장’을 통해 사망자 수에 담긴 사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등장한 확진자, 사망자 수에 무감각해진 요즘 그 아픔을 살펴보고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https://remember2022.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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