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최애 작품이 있다.
나는 많지 않은 선택지 속에서,
유독 이 작품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이야기는 인생의 사계절을 따라 흐르고,
그 계절마다 나는 조금씩 다른 나를 만난다.
봄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호로록, 마음이 먼저 깨어나는 계절.
설명할 새도 없이 좋아져 버리는 것들,
그게 봄이다.
여름은 만선이다.
햇빛이 너무 많아 숨이 찰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건져 올린다.
넘치도록 흔들리고, 땀 흘리고,
그래서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가장 분명한 계절.
그리고 이제
자락자락, 가을이다.
자락 자락한 것들이 영그는 계절이었다.
알알이 또 다른 난장을 체우며
또 다른 땡볕을 담으며...
넘어진 것들이 이유를 얻고
살아온 날들이 말이 되는 계절.
겨울은
넘어질 줄 알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 계절이다.
나는 이 작품이,
이 계절들이 참 마음에 든다.
애순이는 금명이에게 말한다.
“우리 금명이는 펄펄 날아다니게 하고 싶어.
상을 차리는 사람 말고, 상을 엎는 사람으로.”
그건 애순이가 끝내 이루지 못한,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꿈이었다.
날고 싶었고,
엎고 싶었고,
그래도 꺾이지 않고 싶었던 마음.
관식이 같은 사람을 만나
배를 곯아도 마음은 곯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살다 보면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나중에야 알게 된다.
광계 딸 애순이에게 건네진 말은
삶의 주문 같았다.
“살민 살아진다.
살다가 죽겠걸랑,
죽을 고비 골백마다
살 이유가 골백 개다.
죽겠는 날이 오거든
죽어라 발버둥을 쳐라.
발 갈아엎고 품이라도
죽어도 살고야 만다.
죽어라 팔다리 흔들면
꺼먼 바다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여.
반드시 숨통 트여.”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백 리 길도 간다.
너무나 어렸고,
여전히 여린 그들의 계절에
미안함과 감사 , 깊은 존경을 담아
폭싹 속았수다.
입춘이 지난 지금의 계절에
나의 봄을 다시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