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마라, 나의 시간들

by 담빛노트

설 명절, 본가를 다녀오는 길에

가족들과 커피를 마시러 동네를 걸었다.

그사이 또 가게 하나가 바뀌어 있었고,

뒷산에는 산책로가 생겼다.

늘 건너던 다리는 단정하게 보수되어

조금은 낯설게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걸음을 제촉하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을

지나치며 이야기를 꺼냈다

한여름 밤, 도둑이 들어

슬리퍼를 신고 허겁지겁 뛰쳐나오던 나.

그때는 무서워 울먹였던 기억인데,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삐삐가 등장하고,

폴더폰이 나오고,

스마트폰이 손안의 세상이 되기까지.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건너온 세대다.


삐삐가 울리던 시절,

골목마다 공중전화가 서 있었다.

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나는 오래된 자리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공중전화를 발견했다.


그 앞에 서자

학창시절의 내가 스쳐 갔다.

좋아하던 아이에게

심장이 터질 듯 설레며

“나 너 좋아해”라고 말하던 그 순간.

수화기를 붙잡고

괜히 동전을 한 번 더 만지작거리던

그 풋풋한 용기.

그 설렘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공중전화를 보며

마음속에 봄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데

기억은 제자리에 머문다.


사라지지 마라.

나의 어릴 적 추억아.

내가 다시 찾아오거든,

그 자리에

조금만 더 그대로 있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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