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견디는 힘을 배우는 밤

by 담빛노트


저녁이 되면 우리 집은 잠깐 조용해진다.

각자의 하루를 들고 방으로 흩어졌다가,

잠들기 전 다시 식탁에 마주 앉는다.


요즘은 너에게 들려주는 꿋꿋한 말을 한 장씩 읽는다.

청소년이 된 아이와, 아직 덜 자란 어른인 내가 함께.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이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게 뭘까.

건물? 없다.

대단한 유산? 더더욱 없다.

완벽한 부모의 모습? 그건 애초에 품절이다.


다만 하루를 버텨내는 방식,

툭 치면 부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태도,

그리고 가능하면 조금은 긍정의 언어를 선택하려는

서툰 노력 정도.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거울이라기보다

가끔 김 서린 유리창에 가깝다.

닦아야 보이고,

닦다가 또 얼룩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책을 빌린다.

내 입으로 말하면 왠지 오글거릴 문장들을

작가님의 힘을 빌려 조용히 건넨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책이 대신 말하게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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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몸집이 크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 앉아 가장

오래 '혼자를 견딜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과 세상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생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너에게 들려주는 꿋꿋한 말 p183


이 문장을 읽고 우리는 잠시 멈췄다.

“혼자를 견딜 힘이 뭐야?”

아이의 질문은 늘 직선이다.


나는 심각한 얼굴 대신,

약간 심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와이파이 없이도 살아남는 힘?”

아이의 웃음이 먼저 터졌다.


심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

휴대폰을 찾는지,

누군가를 부르는지,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는지.

혼자를 견딘다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도망치지 않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혼자를 잘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늘 바쁘거나,

늘 누군가의 기대 속에 있었고,

조용한 시간은 어색했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에게는 그 힘을 물려주고 싶다.


심심함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고요함을 실패로 착각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자기만의 질문으로 채울 줄 아는 사람.


몸집이 크지 않아도,

지위가 높지 않아도,

혼자 앉아 자기 생각을 끝까지 데려가 보는 사람.

그게 단단함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책의 뒷장에 있는 그림 속 고양이는

괜히 평온해 보인다.

아무 일도 안 하는데

왠지 제일 잘 살고 있는 표정이다.

아, 저게 바로

‘혼자를 견디는 표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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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도 우리는

한 장을 읽고,

조금 웃고,

조금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하루를 살아내고,

가능한 한 좋은 언어를 고르고,

아이의 인생에 업혀갈 문장을

조금씩 모으는 중이다.


언젠가 아이가

세상의 소음 속에서

잠시 혼자가 되었을 때,

그 밤에

오늘 읽은 문장 하나쯤

조용히 떠올라 준다면.

그거면,

나는 꽤 괜찮은 유산을 남긴 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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