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이 아니라 꾸준함이여]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마라톤 역시 하면 할수록 힘들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 입문해서 열정적으로 연습할 때는 달릴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기록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그 시기에 기록에 대한 과한 욕심이 있었던 사람은 부상으로 마라톤을 빨리 그만두는 경향이 많다.
나의 경우, 마라톤 하면서 발톱이 빠지는 자잘한 부상은 상시 경험했지만, 큰 부상을 당한 적은 없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기록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달릴 수밖에 없었던 게, 이십 년 가까이 달릴 수 있는 동인이 되었다. 남들보다 잘 달리지 못함을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라며 변명 아닌 변명으로 둘러대기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라톤이 힘들다. 예전처럼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열정도 많이 줄어서 그럴 것이다. 어느 순간 기록이나 참가 횟수에 대하여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니 참 좋다. 그렇지만 마라톤을 대하는 자세가 느슨해지는 점은 고쳐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마라톤대회 일정이 잡히면 며칠 전부터 마음 다독이고 음식 가리고 했었는데, 요즘은 마라톤 전에도 개의치 않고 술 마시기는 버릇이 생겼다.
마라토너는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달리기에 진심이어야 한다.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장거리이기 때문에, 우쭐대거나 자신의 연습량만 믿고 겁 없이 덤볐다가 낭패 보기 일쑤다. 일정 부분 경외심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라톤에 대한 모독이다. 마라톤을 할 때는 진심으로 전력을 다하고, 우쭐거리거나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대회를 앞두고 술을 자제할 것이며,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손 내밀어야 한다. 오래도록 달리기 위해서는 신체의 기능이나 능력에 맞게 천천히 달리는 것이 빨리 달리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임을 명심하자.
달리는 소설가인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자전적 산문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젊었을 때보다 느려졌지만, 이제는 그 느림을 좋아하게 되었다”라고 고백하는 지점에서 나는 무릎을 쳤다. 달리기를 즐겨하는 나의 입장에 대비하면 너무나 공감 가는 말이다. 이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나의 속도에 맞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그의 산문집에서 고백한 “나는 달리기를 하며, 조금씩 나 자신을 만들어 왔다.”는 문장을 접하며 하루키의 성실성과 꾸준함을 존경한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하여 달린다고 했다. 사실 그의 삶에서 달리기를 빼놓고 그를 말할 수 없다. 그는 천재적인 영감보다는 ‘매일 달리는 사람의 꾸준함’을 더 신뢰한다. 적어도 그는 달리기에 진심이었다. 하루키는 책 마무리에서 만약 자신의 묘비명을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마라톤의 진정한 가치는 빠름이 아니라 꾸준함이다.
똑같은 달리기지만, 기록을 의식하고 무리하게 달리기보다는 나이 들수록 적당하게 즐기면서 달릴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같은 꽃이지만 나이 많은 홍매화 꽃이 더 예뻐 보이는 것은, 세월을 켜켜이 쌓은 나무와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일시] 2025년 4월 13일
[대회] 한강, 양재천 일원
[기록] 22km(2시간 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