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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제작을 과학화했으나 약물 과용으로 죽은 배수

(지명연구자의 인간관계 5-6)

by 오해영

과학적 지도제작법을 창안하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지도는 위성 기술과 정밀한 측량 기법을 사용하여 만든다. 지도 한 장만으로도 그 지역의 지형 거리 행정구역 문화유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에는 측량기법이나 장비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시대에 필요한 지도를 만든 사람이 있다. 지금부터 약 1800여 년 전 조위曹魏와 서진西晉 왕조에 살았던 배수裴秀이다. 그는 제도육체製圖六體라는 지도제작법을 창안하여 지도역사에 금자탑을 쌓았다.


제도육체는 지도를 과학적으로 제작하기 위한 여섯 가지 원리와 방법을 일컫는데 항목은 다음과 같다.

分率 축척, 準望 위치와 방위, 道里 거리, 高下 수평거리, 方邪 교차각도, 迂直 곡선구간의 실거리


이는 고대 중국 지도 제작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오늘날 중국에서 그를 과학적인 지도 제작의 아버지로 부르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배수장裴秀奖이라는 표창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배수가 제작한 우공지역도


배수는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우공지역도禹貢地域圖 18권을 편찬하였는데 이는 우공 9주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중국영역에 대한 개념도를 지방행정의 실제 영역에 맞게 그린 지리지이다.


그가 살았던 시기의 행정구역 16주에 대한 도로 하천 산맥 행정 경계등에 대한 지리 자료를 수집 비교 검증하여 개념적인 의미의 우공 9주를 실제 지리에 맞게 바꿨다. 그래서 군사 전략 행정 운영 치수 사업 등 국가 정책에 실증적인 정보를 제공하였다.


약점을 극복하고 출세했으나 약물에 기대 살다


배수는 224년 조위曹魏 왕조 시기 하동 배 씨라는 유력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생모는 정부인이 아닌 측실이었고 신분이 낮아 정실부인의 질투와 배척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이러한 출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적 재능과 조심스러운 언행으로 주변의 점수를 받고 가문의 후계자로 자리 잡았다.


그는 관구검의 천거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조위 황제의 글공부 상대로 있다가 조위 왕조 권력 핵심자의 측근이 되었다. 이후 진晉 왕조의 초대 황제 사마염司馬炎을 옹립하는데 공로를 세워 승승장구하였다. 그는 국가의 토목 수리 지리 정보를 총괄하는 최고직위까지 올랐다. 그의 일생은 진서 열전에 기록된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의외였다. 그는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환각 흥분 효과로 일탈수단으로 사용되는 한식산寒食散이라는 약물을 과다 복용하다 48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 약물은 일종의 감정 고양과 쾌락을 유도하나 심하면 사망을 초래하기도 했다.


배수의 인간관계를 어찌 봐야 할까


배수가 활동하던 시대는 문벌이 곧 출세 보장의 요건이었었다. 그는 명문가 출신이라는 강점을 십분 활용해 고위직에 올랐지만 동시에 서자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사회적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성격이 다른 두 왕조에서 권력 핵심부와 관계 맺기를 잘하여 왕조가 교체되어도 살아남고 오히려 최고직위까지 올랐다. 그는 조직의 핵심과 잘 사귀며 권력자들과 관계를 잘 맺는 남다른 재능이 있었거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약삭빠름과 사람의 정을 경시하는 품성을 가졌을 수도 있다. 왜냐면 그가 살았던 시기는 위진남북조라는 중국사에서 보기 드문 대혼란기로 지식인들은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이었다.


일종의 줄 서기를 할 수밖에 었었던 시대인 것이다. 예를 들면 죽림칠현처럼 현실을 도피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거나 아니면 위 씨나 사마씨 중의 한 곳에 편을 들어야 살 수 있는 사회였다. 그러한 시대에 그는 두 정권에서 살아남고 출세도 하였다. 그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거나 이중성이 있는 인품 소유자이었을 수도 있다.


배수의 생애는 한 인간의 지식과 실용, 현실과 이상, 출신과 재능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문제점을 던진다. 그는 지도제작에 큰 업적을 남겼지만 인성 모순을 나타내는 삶을 살기도 했다.


우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까? 가치관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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