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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Aug 18. 2023

공자, 눈앞에 나타나다(설화2)

공자동 마을 사진

 지식인들이 공자님을 생활공간에 모시고 살아온 김천 구성면에 있는 공자동 마을 이야기이다.


이 마을에는 공자가 닮고 싶은 주공, 그를 기리는 모성암, 제자를 칭하는 안연대, 공자를 지칭하는 대성분교등이 현재도 있다. 


마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17세기 중엽 세 선비가 세상을 멀리하고 학문에만 정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식솔과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임진왜란 뒤 한 관리가 중국에 가서 공자의 초상화를 구해 본인의 고향인 이곳에  모신 이후 공자동으로 불렸다는 설이다


설화는 공간의 특정이 어려운 옛날 옛적의 이야기인데  김천 공자동의 경우 아예 공자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생활공간을 공자 테마로 꾸미고 살아온 경우이다. 


당사자들이야 공자를 숭배하는 의지의 실현이란 점에서 그럴 수 있다고 이해되나  딸린 가족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자 설화가 전승되어 온 지역을 살펴보자.  

 

 공자 설화는 18개 지역에서 23편의 이야기가 현존하는데 서울과 멀리 떨어진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 19편이 분포한다. 


현재의 지명이 나오는 시기는 고려 이전이 2개소이고 16개소는 고려 이후에 나온다. 특히 조선 이후가 10개소나 된다. 


지명의 자주 바뀌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의 나이가 비교적 젊다

  

예를 들면 김천의 경우 4편 이야기가 있는데, 이 지역의 특징은 나라의 중심지에서 소외되어 있고 영호남의 접경지역이며 민란과 의병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래서 지역 사회의 주도층에 변화가 잦았을 수 있으며 이들이 자기들의 의지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지명의 개명을 자주 시도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하다 보니 개명의 피주도층인 백성들이 주도층의 행위에 수긍하지 많고 반발의 수단으로 그들의 존중자인 공자를 설화의 세계로 끌어들였을 수 있다.   


     


약자에게 망가지는 공자의 설화가 왜 생겼을까


 현재에도 공자에 대해 경외한 마음이 있어 공자님 이리고 해야 마음이 편하다. 전통 시대에 공자의 영향력은 어쩌면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컷을 수 있다. 개개인의 삶과 생활사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 설화를 살펴보면 평범한 우리 이웃인 부락민, 부인, 개구쟁이, 못생긴 여자, 공양주등과 지혜를 겨뤄 여지없이 망가지고 망신을 당하는 설화가 다수 전승하고 있다.     


왜 그렇까? 


전통사회에서 공동체의 주도층은  공자를 앞세워 비지식인 또는 백성을 통제하였을 것이다.  

   

설화가 보통 백성이나 비지식층에서 생성 전승됐다고 생각하면 이들은 설화를 통해 주도층의 전가보도인 공자를 뭉갬으로써 스트레스 해소 즐거움을 맛보았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에서도 정치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부류를 골목의 술집에서 술안주나 가십거리로 등장시키는 경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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