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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Oct 04. 2023

오래 살아도 돌대가리 동방삭
(설화2)

경험과 경륜이 많아도 지혜가 없다면


기획봉사 활동으로 장수한 동방삭(설화1)이 어이없는 입방정으로 저승사자에게 잡힌다. 우리는 풍찬노숙을 겪어 온 노인을 보면 걸어 다니는 박물관이리고 칭한다. 


살면서 쌓인 경험과 경륜으로 지혜가 많을 거다고 여긴다.  그런데 삼천갑자나 살았어도  지혜는 어찌 되어 동방삭은 잡혔을까?  설화 한편을 소개한다.       

        

-삼천갑자 동방삭을 잡은 저승사자-


사람이 언제 죽는지를 관장하는 염라대왕(불교에서 저승의 일을 살피는 십왕중 다섯 번째)은 사람의 수명이 기록된 명부(冥府)를 가지고 있다.


“ 저승사자야, 이 사람을 지금 잡아올 때가 됐다. 몇 월 며칠자로 불러와야 한다.” 하고 명을 내린다.     

그런데 염라대왕이 명부에 죽을 때가 된 동방삭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려야 함을 잊어버린 일이 생긴 거야. 


어느 날 이미 죽음 사람들이 기록된 명부책을 넘기다가 어느 큰 고을 사람들의 죽음을 살펴보더니

앗! 한놈이 살아있다. 이 놈을 잡아와라!  아이고 이놈을 못 잡으면 어떡하나”  하고 저승사자에게 명을 내렸다.    

 

이미 동방삭은 삼천갑자를 넘겨 살아(삼천 년의 육십 번) 늙었음에도 철없는 아이들처럼 막 뛰어다니고 그랬다. 행동만으로 동방삭을 알아볼 수가 없어서 사자는 꾀를 생각해 냈다. 검디 검은 참숯을 강가에 갔다 놓고 숯을 갈았다. 이때 이곳을 지나가던 동방삭이      


“웬 숯을 갈며 무엇을 하는 거야? ”  “ 이 숯이 허예지라고 갈고 있는 거야!” 리고 대답을 하였다.

“웬 별 빌어먹을 놈 다 봤나?  나는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갈아서 하얘지길 바라는 놈을 너밖에 없을 거야”


저승사지는 그가 동방삭임을 알아차리고 잡아서 염라대왕 앞으로 끌고 갔다. 염라대왕이 동방삭을 보니 삼천갑자를 살아 매우 늙어 기어 다니지도 못할 텐데, 이리저리 막 뛰어다녔다.

 

“옛날엔 사람을 잡아갈 때가 되지 않으면 병이 나지 않았지. 염라대왕도 늙어서 명부책을 꼼꼼히 보지 않는 거야. 염라대왕도 너무 오래 산 잘못이 크지.”    

 

우리 선조와 중국인의 장수 모델


중국인들은 별을 보며 장수를 기원했는데 그 별의 이름을 수성(壽星) 또는 노인성(老人星)이라 하였다. 동한시대부터 백성들은 수성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는 7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잔치를 벌이고 지팡이도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불교의 저승세계(명부전)와 지역 신앙이 융합된 동방삭을 롤모델로 삼았다.     


나이 듬과 입방정


사람은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쌓인 경함과 경륜으로 원숙함을 띄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노인들은 지혜의 보고 이므로 공동체의 정신적 지팡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위의 말이 꼭 맞지 않는 사례를 왕왕 본다. 


노인들의 언행을 살펴보면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은 것처럼 융통성 없고 옹고집을 피움을 엿보기도 한다. 


그래서 전근대를 살았던 우리 설화층도 주변의 이해심 없고 꼬장꼬장한 노인을 보면서 삼천갑자나 산 동방삭이 입방정으로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어 저승사자에게 잡힌다는 설화를 만들었을 성싶다.  

   

왜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잡는데 숯을 사용하였을까?


성남에서 송파를 거처 한강으로 흐르는 하천이 탄천이다. 과거 탄천에서는 한강 상류지역에서 물길로 운반해 온 참나무를 이용하여 참숯을 만드는 공장들이 즐비하였다.


 이들의 한강 건너 한양의 양반이나 부잣집에 숯을  판매하고 다니면서 보고들은 양반노인들의 못돼 먹은 행동이나 소문을 이야깃거리로 만들고 동료들에게 전파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숯이 장을 담글 때나 음식을 저장할 때 소독 기능을 함을 빗대어 오래 살아도 지혜 없는 부류들을 정화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의도한 선행으로 장수하게 된 동방삭이 인생의 참된 지혜를 얻지 못하고 가볍고 천박한 행동을 하여 잡히게 되는 설화를 통하여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혜 있음이 중요함을 말하려는 것 아닐까 한다     


홍천의 지명


홍천은 고려 현종시기에 나온 지명으로 그 이후 약 1000년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의 지방행정이 완비된 때로 천년이상 지명이 변화가 없다는 뜻은 유력자들이 지명을 수단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표시하려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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