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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Oct 11. 2023

우리가 남이가?  누루하치(설화)  

 편 가르지 마, 이웃

우리는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되는데 서로 간의 친소관계가 나와 공동체의 안정에 지대한 영향이 우려되면 나의 형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균형감을 잃지 않았는지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 이웃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참고할 만한 설화를 소개한다.   


누루하치는 수달피의 자식(설화 장면)


어느 해변가의 외딴집에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인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 여자는 해역으로 먹고살다 보니 고된 노역으로 몸은 피로한 데다  날씨는 따뜻하여 좀 쉬려고 해변가의 넓은 반석에 누워 한숨을 청했다. 


 “ 호부래비(홀아비 수달)가 해역을 하다 말고 자고 있는 여자몸 위에 올라와 자기의 몸으로 여자의 배를 덮고 있는(성행위 묘사) 거야”    


그 여자는 해역만 하고 혼자 살다 보니 그런 일을 잘 모른 데다가 그런 일을 당했으나 좀 좋았나 봐,  

호부래비가 하는 짓을 그냥 냉기 삐렸어(내둬 버렸어).     


그런 일이 있은 후 시간이 흐르자 배가 차차 불러와 애를 낳을 때가 되었어. 여자는 집에 와서 문을 빼꼼히 열어 놓고 누웠는데,  


 “개가 들어오고 뒤따라 수달피가 졸졸 따라와서 애 낳은 모습을 들여다 보가 가거든.”

문 열리제, 뭐 열리제!”     


아이는 자라면서 얼굴이 차차 비범해졌으며 해변가의 반석에 나가 놀기를 좋아했다. 또 이곳에 백발노인이 죽장을 짚고 와서 쉬었다 가곤 했다. 


“니 성이 뭐이고?” 애는 성도 몰랐다. “너거, 네 어른이 있나?”   “어른은 일찍 작고 했다.”     


어느덧 서로 친분이 생겨 둘은 깊은 대화를 하게 됐다. 며칠 후 둘은 반석에서 또 만났는데 


“너 물재주 있나?”  “해역을 하고 삽니다. 물속에 들어가서 앵간하면(어지간하면) 알마든지 있지요.” 

“나는 아바이도 없고 수달피를 간수해 놓은 것 밖에 없다.”     

 

노인은 아이가 물길질을 잘하니 부탁이 있다며 물속에 들어가면 사람 모양의 돌이 있는데 백발노인이 자기 어른의 시체를 수집하여 올 테니 걸어 달라고 하였다.


“내가 주는 시체는 사람모양의 돌 왼 귀에 걸되 니 어른 시체는 오른 귀에 걸어도 좋다.”     


집에 와서 노인과의 대화를  어머니께 말하니 너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마른 수달피 머리를 아들에게 내주었다. 아들은 노인의 어른 시체는 왼손에 수달피 머리는 오른손에 들고 물속에 들어가서 사람 모양의 돌이 나타나자 휙 돌아서서 각각의 시체를 귀에 걸었다.      


“어떻게 걸었니?” 쭉 내려가서 걸었니? 돌아서서 걸었니?”

 “돌아서서 걸었습니다.” 노인은 운명이 바뀜을 알고 나서는


 “우리 대대로 마음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내가 못 살면 네가 구조해 주고 네가 못 살면 내가 구조해 주고”    나중에  수달피 자식인 누루하치는 대국천자가 되었다.    


설화의 배경(역사장면)


누루하치는 청나라를 창업하고 키워가는 과정에서 조선에 우호관계를 맺자고 수차례 국서를 보냈으나 조정은 무시하거나 국왕의 이름이 아닌 평안감사의 이름으로 거절하는 답신을 보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누루하치를 노추(奴酋)라고 칭하여 깔보고 있다. 임진왜란 때에 2회나 원병을 제안하였으나 조정은 명나라의 눈치와 오랑캐라고 무시해 온 자의 도움이라 자존심이 상하여 거절했다.


임란 후 조선정부는 누루하치와 명나라와 운명적인 싸움(사흐르 전투)에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군대를 어쩔 수 파병하였으나 광해군의 지령에 따라 바로 누루하치에게 항복을 해버렸다.


그래서 광해군 시기에는 누루하치와 충돌을 피할 수 있었으나 인조임금 때는 조선의 권신들의 정권쟁탈과 명나라와의 사대주의에 젖어 이웃 간의 관계를 한쪽으로 몰빵 하다 보니 백성들에게 재난급의 고통을 초래한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설화층의 눈에 여진족(女眞人)은 우리와 어떤 인연이 있는 이웃이며 한때  공동체를 같이 했다는 경험도 있으므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임을 지배층에 말하고 싶음이 아닐까 한다.


왜 수달과 누루하치 설화가 생겼을까?(지명과 설화)


수달은 물고기를 잡아먹고사는데 사냥솜씨가 대단하여 이를 표현하는 말이 많이 있다. 수렵은 여진족의 중요한 생활기술이었으며 우리 선조들도 산과 계곡이 많은 땅에서 살아가다 보니 물고기 잡이가 중요했다. 더욱이 수달이 누루하치의 아버지라는 여진족의 전설이 있어  물고기사냥의 달인 수달을 매개로 하는 설화가 생겨났을까 싶다.      


그리고 성남지역의 설화는 함경도 회령의 설화와 내용이 매우 비슷하다. 양지역의 설화 줄거리이다.


두만강가의 고을에 사는 좌수(지방행정 기관의 우두머리)의 딸이 결혼도 안 했는데 임신을 하자, 좌수는 범인을 잡기 위해 딸에게 밤마다 찾아오는 남자의 외투에 무명실 바늘을 꽂아 놓으라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실을 따라가 보니 연못 물속으로 연결되어 있고 실을 당겨보나 수달이 나왔다. 후에 아들이  태어나니 그가 누루하치다.


대부분이 산지로 이뤄진 회령은 여러 하천이 북쪽으로 흘러 두만강과 합류한다. 고려말에 우리 영토에 편입된 후 조선에 와서야 회령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다. 거창은 가야, 백제, 산라의 충돌지역이었으나 신라에 편입된 후 757년 거창이라 명명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두 지역에  비슷한 설화가 있음은 차후 남과 북의 소통과 연계를 위해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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