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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Oct 18. 2023

내 반쪽의 죽음, 고통 찔끔 행복 가득(장자 설화1)


부부가 사별을 하게 되면 남은 한쪽은 가장 힘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아마 험난한 삶에 한쪽이 먼저 가면 남은 사람은 어떡하라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장자는 부인의 죽음을 당하자 기뻐하며 노래를 하였다고 한다.    

      

장자이야기


어느 고장에 장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죽고 사는 것을 마음대로 했다. 장자가 어느 날 동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웬 여자가 묘지의 풀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이때는 칠월이라 풀이 왕성하게 자라는 시기이다.


“이 풀의 뿌리를 말리려고 그럽니다.” 그녀의 남편이 묘의 풀뿌리가 마르기 전에는 재가하지 말라고 유언을 하였다 한다.    

 

장자가 살던 시대에 지나(支那 중국)의 풍습은 돈을 많이 모은 기생이 학덕이 높고 점잖은 이를 기둥서방으로 모시고 사는 풍습이 있었다. 어떤 기생이 장자를 서방으로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그가 본 광경을 부인(기생)에게 이야기하자, 그녀가 말하길     


“그 고약한 년을 때려죽이고 오지 어찌 그냥 두고 왔습니까?” 그러자 장자가 가만히 생각하더니 슬며시 죽어버렸다.     


기생은 건넌방에 빈소를 마련했는데 어떤 미남이 초상난 장자 집으로 쓱 들어와 부인을 찾고는 

“장자 선생님의 도학이 높아 공부를 배워 보려고 왔는데 불행히 돌아가셨네요.”


여자는 잘난 남자를 보자 마음이 그냥 훌쩍 뒤집혔다. 미남이 데리고 온 하인이 여자에게 말하길 “우리 도련님은 장가를 아직 안 들었는데 댁에서 며칠을 묵고자 하니 빈방이 있으면 좀 빌려주소.”   

   

여자는 사랑방을 빌려주고 미남의 언행을 살펴보더니 이젠 홀딱 반해버렸다. 그래서 하인에게 중매를 부탁하여 미남하고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결혼식 날 저녁 동방화촉을 올리려 하는데 그만 신랑이 죽어버렸다.

“여자는 남편하고 자야 하는데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어찌하면 좋나?” 하인이 말하기를  “사람의 골을 패서 먹으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여자가 생각하기를 장자는 이미 죽은 사람  이므로 새 신랑하고 살려면 죽은 장자 해골을 뽀개 먹여서 살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여자는 도끼를 들고 관을 열어 대가리를 뽀개려 하는데 장자가 푸시시 일어나하는 말이,     

“내가 죽으면 소복단장하고 염습을 해야지 화관족두리에 연지곤지를 찍어?” 여자는 너무 무안하여 스스로 목을 찔러 죽어 버렸다. 


그러자 장자는 장난이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마누라가 죽으면 고분지통(鼓盆之痛)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항아리를 두들기며 고분지통했다는 이야기가 생긴 거야.”    

 

장자는 누구인가


이름은 주(周)이며 중국 허난성 몽(蒙) 지역 출신으로 전국시대 중기(BC3~4)의 인물이다. 고향에서 옻나무를 관리(종이가 없던 시대 죽간에 사용)하는 일을 하였는데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전국시대와 5호 16국 시대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전쟁과 되풀이되는 정적의 숙청으로 지식인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일상생활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불안을 달래거나 세상사에 관심을 끊고 새로운 세계를 찾게 되었는데 이때 그간 관심이 없던 장자의 사상이 빛을 받게 되었다.   

            

설화의 채집지역 중원군과 장자가 태어난 지명


중원군은 백제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편입된 지역으로 고려 이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중심지역이라 중원이라 했으나 고려 왕건이 충주로 바꿨다. 


장자는 천자 나라의 이름을 자기 이름(周)으로 사용하고 그가 태어난 몽(蒙 우매 무식 등 멸시 의미)은 주(周) 나라에 멸망당한 상나라의 후예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나라의 제후는 형을 자리를 빼앗고 자기 잘만 맛으로 살면서 백성은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장자는 삶의 고단함과 나라의 암울한 앞날을 떨쳐버리고 싶어 심오한 사상을 가지게 되었나 싶다.   

   

장자 설화에 대한 단견     


장자의 사상은 그에 대한 지식이 널브러져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여전히 어렵다. 하물며 전근대시대 책과 글자를 가까이하기 어려운 설화층이 장자를 어떻게 접하고 이해하였으며 더 나아가 설화까지 만들어 냈을까?


중국인이 나오는 설화는 보통 우리나라와 어떤 관계가 있음을 이야기하는데 장자 설화의 경우 중국에서의 이야기임을 밟히고 있다.    

      

또 장자는 부인이 죽자 바가지를 두들기며 노래부름은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고통의 바다를 건너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갔으니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화층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고분지통을 바가지를 두드릴 때 손으로 느끼는 통증이다라고 가볍게 여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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