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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Jun 24. 2023

2. 중국인 설화지역의 지명과 변천

 ① 중국인이 나오는 설화와 지명은 어떤 연관이 무엇일까?     

 설화와 지명은 관련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이며 관련 내용은 무엇일까? 지명의 유래에 따라 설화가 생길 수도 있고 설화에 의거 지명이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이 나오는 설화와 지명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만일 해당 중국인이 직접 한반도에 와서 어떤 행위를 하였다면 설화가 생겨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중국인이 우리 땅에 와 본 적이 없는데 설화가 존재하고 지명과 연관이 될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땅에 직접 왔었던 설인귀나 소정방 그리고 이여송의 경우 설화가 생겨남에 수긍되는 점이 있다. 또 김천의 공자 설화의 경우 조선인들이 그를 숭배하는 마을을 만들어 현재까지 살아오고 있으며 상주 조자룡 설화의 경우 옛사람들이 상주를 중국의 낙양으로 여기고 조자룡의 탄생지를 상주로 끌어 들었다.  보통 중국인이 나오는 대다수의 설화는 지명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명의 변천중국인의 행위를 연계할 경우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과거 지명의 결정과 변경은 왕이나 귀족 또는 지역사회의 주류층에 의거 추진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을 것이다. 그들이 결정한 지명을 따라야만 했던 백성들은 호불호를 직접 말하기는 어려운 입장이 많았을 것이다.   

   

이들은 지명 개명에 대해 싫다를 표현할 대안으로 설화를 만들었을 수 있다. 개명을 주도한 주류층이 존경하거나 숭배하는 중국인을 설화로 끌어들인 다음 이 중국인을 뭉개고 망신을 줘서 개명에 대해 싫다는 마음을 나타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공자 설화의 존재 지역의 지명은 신라의 지명을 고려나 조선시대에 변경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백성들은 바뀐 지명의 귀찮고 번잡함을 설화를 통해 표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한 설화에서 중국인이 나쁘거나 망신을 당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게 펼쳐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 지역은 신라 때의 지명이 현재까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 조선시대에 개명이 됐다 할지라도 지명의 생사가 엎치락 뒷치락을 반복했었던 지역이었다.    

      

⓶ 우리나라의 지명 변천 과정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의 이름은 서울과 미추홀을 제외하면 모두 한자를 사용한 중국식 지명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나라식으로 이름이 만들어져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삼한시대 한반도에 78개의 국가가 있었다고 중국 측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우리말을 한자로 기록한 것으로 대부분 지명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는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의 지명을 당나라식으로 개명하였다. 이때의 개명정책의 방향이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⑴ 통일 산라의 개명 내용

 경덕왕은 지명의 격식을 통일하였다. 기존의 지명은 3~5자였으나 주는 두 글자로 군현은 세 글자로 하였다. 이때 사용하는 한자는 유사한 음과 뜻의 글자를 위주로 개명을 하였다. 개명 전의 주로 사용하는 한자는 阿, 也, 夫里, 怱, 吐, 尸, 兮, 仇 등 9자였으나, 이 글자들은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 유사한 음을 가진 글자로 추정된다. 이들을 좀 더 세련되고 품격이 높은 한자로 치환을 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말의 맛이 사라지게 되기도 했다.  

   

⑵ 고려의 지명 개명

  고려 태조는 삼한을 통일한 후 지명의 두 번째 글자를 자연적 지리적인 여건의 글자로 신라가 개명한 지명의 약 45%를 바꿨다. 즉 水, 山, 河, 川, 城, 田, 溪, 谷, 嶺, 津, 野, 丘, 海 등을 사용하였다.   

  

⑶ 조선의 지명 개명

 조선 태종은 지방관이 목사 이하인 경우 군현의 지명을 山과 川 글자 중 하나를 택하여 고려의 지명중 51개 지역을 바꿨다.     

이와 같은 지명의 개명의 흐름은 왕조가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한자화 과정을 밟아 왔으며 그 결과 중국 지역의 지명과 이름이 같게 되는 지명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⑷ 지명 개명의 목적과 수단

 새 왕조가 성립하면 그의 정당성 확보와 귀족의 권한을 압박하여 왕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전 왕조의 지명을 개명하였다. 또한 지방 귀족의 중앙정부에 대한 협조 정도에 따라 개명을 하기도 하였다.     

수단은 비교적 고도화된 행정력을 동원하였으며 이를 주도한 세력은 중국 문명에 호의적인 사대사상을 가진 중앙과 지방의 귀족 권력층과 지역사회의 지배적인 사회 주도세력이었다.     


⓷ 설화에 중국인이 많이 나오는 지명과 변천 특징

 중국인이 설화에 등장하는 지역은 자치단체의 98개소에 분포되어 있다. 이 중에서 4건 이상의 설화가 수집된 지명은 상주, 진천, 아산, 김천, 진양, 월성, 영월, 장성, 예천, 이천, 김포, 남원, 원주, 정읍, 단양 등 15개 지역이다. 경상도 지역에 비교적 많다.  

    

이들의 지명 개명 특징을 살펴보면 현재의 지명이 신라시대에 개명된 남원과 정읍을 제외하면 모두 고려나 조선 시대에 어떤 경우는 일제 강점기에 또는 한국에서 개명이 된 지역이다. 이들도 이때 개명 후 계속 유지되어 온 지역은 4개소이며 나머지 9개소는 지명이 엎치락 뒷치락을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⓸ 지명의 생명력과 설화에 중국인이 나오는 지명의 특징     

 인명 설화는 보통 장소와 시기가 특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중국인이 나오는 설화도 인명 설화의 범주이므로 장소와 시기가 선정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인 설화가 수집된 지역과 지명과의 관계를 찾아보려 다각도로 고민을 해봤다.      


공자설화와 같이 우리 땅에 직접 와 본 적이 없는 경우 지명과의 연관성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지명의 개명이 신라 시기에 개명된 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지명의 경우보다 고려 이후에 개명된 지역에서 많이 분포하고 있다. 숫자로 환산하면 지명의 나이가 1266세 이상 지명보다 1266세 이하 지명에서 설화가 많이 채집되고 있다.


이를 해석해 보면 고려와 조선시대는 성리학으로 무장한 주류집단이 강한 행정력을 통하여 그들의 정신세계에 어울리게 개명을 하였을 것이다. 이를 받아들여만 하는 백성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거나 반대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바뀐 지명에 불만을 표시하였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 그 당시 개명 주도세력이 떠받는 중국인을 설화로 끌어들여 그 중국인을 뭉개뜨리는 험담을 만들고 전파하였을 것이다. 즉 중앙정부나 주류 계층의 지명 개정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히는 방법으로 설화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명변화에는 주도권자와 이를 따르는 부류가 있어 이 두 세력의 대결이 있어 왔음을 종종 기록으로 봐왔기 때문에 능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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