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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May 22. 2024

나라가 망하려니 설화도 뒤죽박죽(원세개 설화)

아산에 원세개에 관한 설화 한편이 전해오고 있다.


 갑오년에 경상감사 오석장이 원세개에게 선물을 했는데 감 일백 접과 청어 백 두름이었다. 원세개가 고맙다는 답서를 보냈는데 내용인즉


무슨 물건인가(問重何物)?

선물 가운데 일백 푸른 것(水中百靑)과 목실 천실과 나무 열매 일천 실을 정으로 보내니(以情松之) 삼가 다정함을 느껴 말을 알지 못한다(근령다감 부지위사, 謹令多感 不知謂辭). 원세개는 큰 장사였는데 조선에 와서 일본하고 전쟁을 하다 패해서 갔다고 한다.  

   

원세개가 조선에 한 짓거리

  

원세개는 임오군란 때인 1882년 중국 수군 오장경 제독의 참모 자격으로 조선에 왔다. 그 후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까지 10여 년을 조선정부를 좌지우지하였다. 훈련원의 쿠데타인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대원군을 마음대로 잡아서 중국 천진으로 납치하였으며 1884년 개화파의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왕과 왕비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청군을 궁궐로 침입시켜 정변을 총칼로 진압하였다. 


조선의 세관을 중국 세관의 하부기관으로 만들었으며 전신과 통신 등 사회기반시설 설치와 운영할 때 청나라인들에게 독점사용권을 준 인물이다. 그리하여 많은 중국 상인들이 물밀듯이 조선으로 진입하였다. 이런 청나라와 원세개 자신을 위한 일련의 과정 결과 조선은 자주적 근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했고 끝내는 일본의 식민지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는 조선에서 생활하면서 조선여인 3명을 첩으로 두고 자녀 7남 8녀를 낳았다. 이 여인들이 나중에 청나라로 갔는데 중국에 있던 본처나 첩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구박을 당하며 살게 된다. 그의 나이 23세에 조선에 와서 30대 중반까지 제멋대로 살고 조선을 지배하는 식민지의 왕처럼 행동하였다.     


원세개가 설치던 시기의 조선 백성의 삶은 어땠을까? 


원세개가 있던 시기는 조선왕조의 말기 증상이 극도로 악회 되는 때였다. 왕실과 관리의 무능과 부패가 심하여  백성들은 규정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여야 했으며 백성의 배고픔을 도와주려 설치한 국가의 각종 구제 제도도  가난을 구재해주기는 커녕 더 배고픔을  가중시키는 역할만 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할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유랑하였으며 그러다가 민란에 참여하거나 동학에 들어섰다.

 

이제 설화로 돌아가 보자.


설화는 말 그대로 옛날 옛적에 있었던 이야기이지만 재미와 의미가 있다. 그런데 원세개 설화는 다른 중국인이 나오는 설화와는 다르게 내용이 뜬금없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이해가 어렵다. 즉 원세개의 조선에서의 활동시기로 보면 먼 옛날이 아닌 130여 년 전의 근세이다. 보통의 설화로 본다면 현재와 같은 시기로 원세개가 조선에 와서 저지른 일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의 악행에 관한 설화이다. 


또 한자를 사용하는데 엉터리 성어를 만들고 있다. 이 무렵 조선정부는 한글을 공식문자로 인정하고 국가의 공문서 등에 한글이 사용되던 시기인데도 설화에서는 한자가 나온다. 경상감사가 원세개의 상대로 나오는데 그 무렵 일본 군대가 경상도 부산 지역에 상륙하여 동학군을 진압하고 있을 시기이다. 또한 설화의 생성지역은 아산이다.     


원세개가 조선을 떠나고 15년도 못 경과하여 나라가 망한다. 망국의 원인이야 많겠지만 설화로 이야기를 한다면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백성들이 나라 관리들로부터 받는 핍박이 극에 달했다. 원세개는 조선에서 많은 나쁜 일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의 상대는 조선의 국왕을 비롯한 높은 지위의 관리들이었을 것이다.


 원세개는 과거에 실패하자 출세 탈출구로 조선을 정하고 청나라 수군제독의 알음으로 군대에 합류한다. 그러나 다른 군인들이 원세개를 전우로 여기거나  군인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이에 원세개는 자신의 위엄을 세우려 군기 잡기를 이용하였는데,  청나라 군인들이 조선백성을 괴롭히거나 재물을 빼앗은 행위를 엄단케 하였으며 그러한 행위를 한 군인은 사형에 처했다. 그래서 조선 백성들 눈에는 그의 행위를 통해 조선 관리의 악행에 대한 복수 대행자로 보일 수 있다.    

 

두 번째로 원세개의 상대가 경상감사인데 그 당시 경상도에는 임란 후 다시 일본 군대가 공개적으로 상륙을 한다. 이들을 관리해야 할 경상감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이나 동학도를 탄압에 일조함을 보고 미운 원세개에 선물을 보내는 역할로 하여 감사를 비꼼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어려운 한자 문자를 쓰고 있는데 그것도 엉터리 한자문장을 사용하고 있다. 그 당시는 이미 한글이 공식문자로 인정되어 있고 많은 쓰임이 있는데 완고한 일부 사대부들의 한자 사용 행태를 꼬집코자 그렇게 한 것 같다.


그래서 근세의 중국인인에 대한 설화이지만 내용도 부실하고 그나마 설화답지 못하게 꾸며 나라가 망해가는 징조임을 표현하였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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