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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Aug 02. 2023

상주 출신?   조자룡(설화)

지금도 필요한 리더이다

     

삼국지에서 멋있게 활약하는 조자룡이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대?   

 

1. 설화 내용


 ▪상주의 조자룡 굴


  상주 칠봉산에 조자룡 굴이 있다. 이 굴은 두 번째 봉우리 남쪽 비탈면에 있는데 조자룡이 태어났다 하며 남향이나 가뭄에도 굴 내부의 샘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또 그가 태어날 때 말이 하늘에서 이 산의 동남쪽 계곡에 있는 폭포로 내려왔으며, 조자룡이 이 말과 함께 무예를 연마한 후 말을 타고 중국에 가서 명성을 떨쳤다. 

    

▪땅에서 태어난 조자룡


 키가 훤칠한 장사가 혈을 찌르러 상산 땅으로 길을 떠났다. 도중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술을 잔이 아닌 양픈으로 마시고 잤다. 다음 날 아침 장사가 길을 떠나는데 민박집 조영감이 몰래 뒤따랐다.  

   

장사가 상산 땅에 닿자 가져온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하나 박고 또 박고’ 아홉 개를 박았는데 말뚝 하나가 보이지 않자  혼자 생각을 하였다. 

    

 ‘열개를 박아야 하는데 큰 말뚝을 깊게 박았으므로 아홉 개로도 죽을 거야!’ 하고는 상산 땅을 떠났다.   

  

사실은 조영감이 민박집에서 말뚝 하나를 숨겨뒀었다. 조영감은 장사가 박았던 말뚝을 며칠을 거쳐 모조리 빼내자 동자가 땅속에서 나왔다. 


삼일이 지날 때 동자가 말하기를 “내가 살아오면 아버지 어머니께 공을 갚을 것이요, 못 살아오면 이로 마지막입니다.” 하고는 길을 떠났다.     


▪싸움 잘하는 조자룡


 조자룡이 아기였을 때 큰 바위돌 속에서 살았다. 그때 남포들이 와서 바위를 자꾸 깨뜨렸다. 곧 동자가 있는 돌을 깨트릴 참이었다.


 한 도사가 “00 동자가 있는데 어떡하나?” 하고는 밤에 몰래 와서는 정으로 바위를 뚜들겨 깨서 동자를 꺼냈다. 그런 후 동네 영감에게 동자를 줘서 키우게 했는데 영감 성을 따라 이름도 조자룡이라고 했다. 

    

조자룡이 장가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애를 가슴에 품고 장판교를 돌아다니며 싸움을 했다. 이러한 말이 있다. 


   “자~ 재롱이(자룡) 말 놓고 장(창) 쓰지 마라, 만인 장졸이 놀란.”     


2. 그를 언제부터 알았을까?

     

조자룡은 ‘역사서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에 등장한다. 역사서는 삼국시대에 수입되고 소설은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에 도입이 되었다. 


나중에는 한글본도 나오게 되며 ‘조자룡전’ 번역본도 있었다. 독자는 사대부에서 부녀자 및 평민층까지 다양하고 폭이 넓었다.     


이름은 조운이고 중국 허베이 성 진정현 출신이며 생김새나 마음씨가 상남자였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여 사리사욕을 멀리하여 살았다. 그래서 비명횡사를 하지 않고 자연수명을 다 사용하였다. 

    

점령지의 뺏은 땅을 돌려주는 등 백성의 생업이나 평온한 삶을 살아가게 노력을  하였다.     


3. 설화 전래 지역


 상주는 신라 경덕왕 때 개명한 지명이며 태백은 삼국시대에 태백현이라 했다 현대에 와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으며 포천은 조선 때 고려의 포주를 개명한 것이다.   

  

4. 상주와 낙양


 왜 사람들은 조자룡이 상주에서 태어났다고 여겼을까? 상주는 임진왜란 전까지 경상도에서 중심지역이었다. 그래서 경주와 상주의 첫 글자를 따서 경상도라고 한다. 


낙동강이 상주에 이르러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만큼의 큰 강이 된다. 상주는 낙동강유역과 한강유역을 잇는 물류와 교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상주의 상은 上자이며 경덕왕 때 상(尙, 숭상하다) 자로 바뀌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낙양역’을 두었고 이중환의 ’ 택리지‘에 상주의 별칭이 낙양이라고 하며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서는 상주의 동쪽에 있어서 낙동강이라 하였다. 낙은 낙양의 낙수를 가리킨다.

    

경상도 지명유래집에서는 낙동면 낙양리 이름을 중국의 낙양에서  땄다고 서술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 낙양은 여러 왕조의 수도였으며 운하가 발달하고 상주(尙州, 上州)라고도 불렸다.   

  

5. 사랑받는 리더의 출현을 바라며


 조자룡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영화나 게임에까지도 활용되고 있다. 무협 소설가 김용은 무예가 출중하고 지혜로우며 무엇보다 훌륭한 인품을 가졌다고 조자룡을 평가하였다. 


오늘날에도 공은 조직원에게 과는 자신이 떠맡는 희생과 섬김형 리더십 소유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와 같은 리더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음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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