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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Jul 26. 2023

결혼 초야, 술을 택한 이태백(설화)

신부는 다 예쁘다!

  ‘이태백’ 하면 술이나 달을 떠올린다. 술은 사회생활에서 관계 형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주도니 음주문화니 하는 말이 생겨났을 것 같고 달은 시와 연결한다.     

  

과거 우리는 농사를 짓고 발효음식을 만드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술을 만드는데 좋은 여건이었다. 대부분의 집에서 가양주를 담가 먹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태백의 설화는 술에 관한 것만 있나 보다.   

    

1. 설화 내용     


 ▪이태백 이야기     


  어느 부자가 딸이 셋이 있는데 첫째와 둘째 사위가 술을 너무 잘 마셔 질려버렸다. 그래서 세 번째는 술을 못 마시는 사위를 얻고자 했다.


 어느 날 어떤 남자가 밀밭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등을 꾸부녕하게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부자가 왜 그렇게 걷느냐고 물으니 밀밭만 봐도 술이 떠올라 밀을 보지 않으려 하니 자세가 꾸부녕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는 술을 절대로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셋째 사윗감으로 정하였다.   

  

부자는 술창고 열쇠를 셋째에게 맡겼다. 결혼 첫날밤 신랑이 신부의 옷을 벗기려다 옷 속에 술창고 열쇠가 있음을 알았다. 열쇠를 달라하자 신부는 주지 않으려 하자 신랑은 주지 않으면 가버리겠다고 을러댄 후 열쇠를 빼앗고 술창고를 열어 고주망태가 되어버렸다.     


▪이태백과 술구멍    

 

 죽으면 술을 못 먹는다고 하면서 가산을 탕진한 사내가 있었다. 어느 날 종이 술을 받아오다 실수로 땅바닥에 쏟고 말았다. 빈손으로 돌아온 종을 보고 술은 어디 있나고 묻자 실수로 땅에 쏟아버렸다고 하자 땅을 파서라도 술을 되가져오라고 하였다. 종은 술을 쏟은 자리에 가서 땅을 파니 술이 쏟아 나와 죽을 때까지 마셨다 

         

▪ 이태백과 술 300배    

 

 이태백이 한양 가서 과가 시험을 봤는데, 시험관은 동창생이나 학창 시절 이태백 때문에 선생님께 야단을 맞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잘 쓴 답안지이나 점수를 낮게 줘 낙방을 하였다.


 마침 나라에서 외교문서를 읽을 줄 아는 자가 없어 그런 재주가 있는 이태백을 불러 읽고 답서를 쓰게 했다.

      


외교문서 처리


요구 내용 : ‘발뿌리루 돌러 차면 발 뿌리가 깨지는 법이구, 계란이루 돌러차면 계란이 깨지는 법이다. 

                 그러니 우리를 좀 도와달라.’     


답서 내용 : ‘계란으루 돌러차면 계란이 터지는 법이다. 그러니 느덜 가만 있어라.’ 

    

그 공로로 왕 옆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창생이 왕비와 놀아난다고 모함을 하여 할 수 없이 궁을 떠나게 되었다. 그 대신 어디를 가던지 술을 맘껏 마실 수 있는 서류를 만들어 줬다.    

 

그리하여 팔도를 다니면서 맘껏 마시던 중에 충청도에 갔는데 관찰사의 행실이 나쁘다는 소문을 들었다. 관아 가까이 있는 마방에 가서 허리띠를 매 놓은 말을 타고 관아 앞에 있는 승전고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포졸이 ‘무슨 미친놈이 다 있네’ 하고 이태백을 옥에 가뒀다. 그러고 죽지 않을 정도의 밥을 주었다.  

   

이태백은 밥을 먹으면서 ‘궁궐에서는 백마를 타고 댕겨두 시비가 없었는데 시골에 와서 조랑말 좀 탔다고 시비하네’ 하였다. 이 소리를 포졸이 듣고는 관찰사에게 전하였다. 관찰사는 이 사람이 이태백인 줄 바로 알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리고는 충청도의 여러 관아에 이태백에 오면 무조건 술과 밥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말일 지시를 어기면 300배 대접.     


2. 이태백과 달     


그의 시를 읽는 중국인들은 사람이 쓴 게 아니고 신선이 인간세계에 내려와 쓴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친구 집에서 병으로 죽다를 믿을 수 없어 동정호에서 술을 마시며 뱃놀이하는데 물에 비친 달이 아름다워 달을 잡기 위해 물에 들어갔다가 죽었다고 여겼다 한다.    

 

또 어렸을 때 집을 떠나 산속의 절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 후 대시인이 되었다. 62세 때 채석강에서 뱃놀이를 하는데 강물 속에서 돌고래가 튀어 오르자 등에 올라 타 월궁에 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3. 이태백은 누구인가   

  

  중국 쓰촨 성에서 수학 후 재능을 펼치기 위해 27세에 고향을 떠나 장안으로 가서 20여 년간의 직업 찾기를 한다. 그러다 당나라 현종의  대화상대 역할을 하는 자리를 얻었다. 

     

이 자리는 임금의 즐거움을 담당하는 업무로 일종의 연예인 역할이다. 이 자리마저 모함으로 얼마 있다가 실직하고 만다. 그래서 56세에 은거하여 창작활동에 전념하다 62세에 친구 집에서 병으로 죽는다. 그의 노년은 어려웠고 아픔이 많았다.  


 

4. 이태백 설화와 지명   

  

 설화가 채집되는 지역은 김해, 청송, 대덕, 김포 등이다. 김해는 신라 경덕왕 때 나온 지명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청송은 조선시대에 대덕과 김포는 일제 강점기에 사용한 지명이다.     



5. 왜, 설화는 술로 그를 기억할까?


   이태백은 재능을 펼칠 기회를 잡지 못해 겪는 좌절과 인내의 과정에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이태백의 심정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 같다.   


 뛰어난 재주를 활용치 못함, 귀양 등 평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던 그는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존감이 떨어져 삶을 회의할 때! 


자신을 이해하는 친구와 또는 자기와 취하고 그러면서 시련을 이겨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미지는 언플래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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