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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Jul 19. 2023

남한산성 뒤를 보다! 용골대 설화(2)

외줄만 타다 쫄망한 패거리즘

싸움에 뛰어들다(설화 리포터) 

  

▪용골대를 물리친 아이들 

    

용골대가 몰래 백두산을 넘어오는데 대여섯 애들이 소에서 멱을 하며 놀고 있다가 “용골대가 넘어온다” 하는 다른 애들의 말을 들었다.


 애들이 “그래 넘어오라 하라” 하는 말을 듣자 용골대는 ‘지략자가 많구나’ 하고 군대를 퇴각시켰다.   

       

▪ 용골대와 협상한 최명길의 용기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넘어 들이닥쳤다. 왕이 피난하기 위해 도성을 나섰으나 벌써 청군이 홍제동에 도달하여 급히 숭례문으로 되돌어 왔다. 


숭례문 2층에서 한숨만 쉬다가 다음날 새벽 광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몰래 피했고 주전파는 이미 도망을 해버렸다. 


최명길을 고기와 술을 가지고 청군의 진영으로 가서 용골대를 만나 타이른다. 


정묘란 때 형제가 되기로 했는데 형제가 싸우면 안 된다 하면서 이야기를 하느랴 청군의 진격을 늦어져서이 틈에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할 수 있었다.


광희문은 상여가 드나드는 문 

   

▪용골대를 물리친 박씨 부인 이야기     

 

 청군이 마음대로 국토를 휘젓고 다니자 이를 본 박씨 부인이 팔문건사지법을 설치하여 군대를 모두 진법에 가둬버렸다. 


용골대는 진법밖에 남아있는 군대를 이끌고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 박씨 부인이 몸종을 시켜 쇠사슬로 용골대를 옭아매서 잡았다.  

   

▪용골대와 장한림     


장안에서 제일 잘 생기고 학식이 높아 한림학사가 된 장한림은 최고의 미인을 마누라로 얻었다. 그런데 마누라가 용골대의 소청을 받아들여  청나라로 따라갔다. 


장한림은 마누라가 보고 싶어 물 건너고 산을 넘어 용골대의 집 앞에 도착하여 문지기에게 마누라를 보고 싶어서 왔다 하였다. 

     

그러나 장한림의 몰골은 이미 형편이 없고 잘생기고 의젓한 맛은 없어져 문지기가 상거지로 알고 쫓아버렸다. 실망을 하고 길 옆 바위에 앉아 있는데 


마누라의 몸종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마누라를 보고 싶어 왔다고 하였다. 

몸종은 몰골로는 몰라보겠으나 목소리로 장한림임을 알아보고 부인에게 모셔다 주었다.      


그러나 마누라는 왜 이곳까지 왔냐며 장한림을 옥에 가둬버린다. 마침 용골대가 전쟁터에서 돌아와 귀가하는데 마누라가 장한림이 왔는데 잡아서 가둬 놓았다고 자랑을 하였다.


 용골대가 잘했다고 하면서 그래도 한림학사인데 죄명 없이 죽일 수 없다며 잔치를 벌이라고 하였다.     

잔칫날 용골대는 마누라를 오른쪽에 장한림을 왼쪽에 앉힌 다음 손님들에게 말하길 “장한림을 죽일까? 돌려보낼까?” 


물으면서 장한림이 잘생겨서 마누라를 빼앗기지 않겠냐며 마누라 목을 베어 버렸다

.      

그는 장한림과 몸종에게 넉넉한 돈을 주면서 돌려보냈다. 압록강을 건넌 후 장한림은 몸종에게 돈을 다 주고는 강릉에 있는 절로 출가해 버렸다. 


주변 사람들이 장한림의 학식 있음을 안 후 그의 가르침을 듣기를 하였다.

이들은 자기 잘났음을 떠벌리자 장한림은 “여자 마음은 밥상을 들일 때도 열두 번 바뀐다” 고 하였다.     


3. 왜 이런 설화가 생겼을까?     


지금으로부터 400년이 안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용골대 설화는 왕을 포함한 지배층의 한심한 행태 그리고 피해를 온몸으로 감당할 백성들이 이들을 직접 욕을 할 수가 없어서


 용골대를 그들의 이야기로 불러들여 불만을 푸는 대리 만족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 나라의 손발 바뀜  

   

 명청 교체기에 두 나라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군 정부는 인조와 서인 세력에 의해 쫓겨난다. 새 정부의 캣치프레이스는 ‘오랑캐 나라에서 사람의 나라’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권교체 후 4년 만에 정묘호란으로 오랑캐와 형제 관계를 맺고 9년 후 병자호란으로 오랑캐를 부모로 떠받들어야 하는 명분상의 큰 모순관계를 초래한다. 


전쟁이 나면 산성으로 피난하는 전략이었으나 청군은  산성을 무시하고 바로 한양으로 진격한다.      

또 서인 세력과 생각이 다르다고 박엽을 제거하여 청의 장애물을 스스로 허무는 문제를 야기한다.     


▪ 새로운 세력의 허황

     

 외교, 국방, 인재관리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던 이들은 전쟁 후 철저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고 본다. 그러나 반성은 커녕 주자학으로 정신을 강화하고 망한 명나라 황제에 충성한다.   

  

▪ 민초들은 생명을 내놓고

    

 산성에서 싸움의 실태를 직접 보고 기록한 남한해위록의 내용이다.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향했으나 신하들도 임금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왕 일행과 피난 가는 백 성이 뒤섞여 헤어진 가족을 찾는 소리가 가득했고 길에는 밟혀 죽은 노약자들의 시체가 많았다.    

 

연려실기술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청나라 군영에는 부녀자들이 무수했고 밖에는 어린이 시체가 너무나 많았다. 화친 소문에 멀리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청병에 마구 죽임과 노략질을 당하였다.     


4. 설화와 지명


 설화가 수집된 지역은 지명의 지속성이 약한 지역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하다 보니 개명이 자주 있었다.


 성남은 현대에서 강화는 고려초에 현재의 지명이 보이나 일제 때 소멸하였다 우리 정부 때  지명이 다시 출현한다. 아산은 조선 때 지명으로 나왔다가 일제 때 소멸하나 우리 정부에 와서 다시 등장한다.     


5. 설화를 해설해 보다     


 ▪책임자를 조롱하다  

   

 국난을 대비하는 핵심계층이 국가정책이 청나라에서 명나라를 중시하는 정책으로 바뀌고 청군이 닥쳤을 때 산성으로 피난 못한 백성들은 적군에게 버려진다. 


현실을 고려한 대비책은 없고 막상 전쟁이 터지자 대부분 도망을 가버린 실태를 용골태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실리추구와 책임감을 지적한다     


 청군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 임금이 피난을 할 시간까지도 없게 되자 최명길이 목숨을 걸고 청군의 진격 속도를 늦춤을 이야기하며 성리학으로 똘똘 뭉친 책임계층을 장한림 부부를 통해 허망한 행실을 꾸짖는다.    

 

▪우리 편이 아니면 유능해도 필요 없다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여 유능한 인재를 찾아야 할 입장에 이미 재능이 증명된  박엽을 아무런 대안 없이 처단한다. 얇은 인재풀인데도 제대로 쓸 줄 몰랐다.  

   

▪결국에는 백성들이 온옴으로 문제해결에 나선다

 결국 절단 나는 나라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박씨 부인, 시녀, 아이들이 전쟁에 나선다.  

   

▪ 합리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다   

  

 용골대와 박엽을 한편으로 묶어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하며 장한림 마누라의 행실이 미워 백성을 대신해 죽이고 장한림과 양심적인 마누라 시녀는 조선으로 돌려보낸다. 

   

5. 옛이야기를 뒤돌아 봄은!   

 

 병자호란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 국난으로  현재도 영화, 소설 등을 통해 뇌네이고 있다. 과거의 일을 잊어야 하지만 거기서 만난 교훈은 음미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

 옛이야기이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언가 알려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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