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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Jul 12. 2023

남한산성 뒤를 보다! 용골대 설화(1)

외줄만 타다 쫄망한 패거리즘

 용골대 설화는 성남, 강화, 아산 그리고 선산에서 채집된다. 성남과 강화는 싸움터였으며 아산은 박엽이 관직을 엮임 하였던 지역이다. 선산은 충효의 고장이었다. 


왜 이들 지역에서 용골대 설화가 전래될까? 그에 대한 설화를 2회에 걸쳐 펼치고자 한다.   

  

1. 주요 등장인물     

 청나라 : 용골대

 조선 : 최명길(실용주의), 박엽(희생양), 장한림(허울 좋은 지식층), 박씨 부인과 아이들(난을 몸으로 막다)     


2. 싸움이 터지려 하다(설화 리포터) 

   

 ▪남한산의 지세를 그려간 용골대  

   

  용골대가 사신으로 조선에 와서 유람을 핑계로 남한산성을 답사한 후 산성의 지도를 몰래 그려 가서 청태종에게 받쳤다. 그 지도에는 산성의 지휘소인 수어장대 보다 높은 벌봉이 산성 밖에 있음을 그린 지도였다.


 지도를 본 청태종은 전쟁의 승리를 자신하고 침략한다. 과연 청군은 벌봉에 포대를 설치하여 성의 내부를 내려다보면서 포격을 하게 된다.  

   

   참고 자료

   수어장대는 해발 497m로 산성의 서쪽에 있으며 벌봉은 515 m 산성의 동쪽 밖에 있다. 숙종 임금 때 성을 쌓고 산성과 연결하였다. 

    

 ▪박엽과 용골대     


 박엽은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많았는데, 집은 한양이고 외가는 천안에 있지만 한나절만에 다녀오곤 했다. 하루는 박엽이 외가를 갔는데 그의 친구들이 툇마루에서 놀고 있었다. 


박엽이 장난 삼아 담장 밖에서 툇마루를 향해 오줌을 눴는데 뜨거운 소낫비가 오는 줄 알고 애들이 놀란다.    

   

후에  박엽은 효종의 동서가 됐지만 가난하였다. 어느 날 저녁 무렵인데도 부인이 밥을 짓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박엽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부인이 방문을 등지고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화를 내고 부인을 바라보니 배가 고파서 방구들의 흙을 파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를 본 박엽이 하인을 시켜 본인의 두루마기를 주면서 종각에 서 있다가 저녁 무렵 준수한 남자가 지나갈 것이니 300냥에 팔고 오라고 하였다. 가난하여 부인을 먹이기 위해 용골대에게 큰돈을 받고 변절한 것이다.


      

박엽이 평양감사 시절에 용골대가 인근에 와서 군사를 조련하고 있었는데 박엽이 매일 밤만 되면 청나라 군대의 훈련장에 가서 조련받고 있는 병사들을 하루 100명씩 부상을 입힌 후 돌아오곤 하였다. 


그의 첩이 이유를 물으니 장차 조선을 침략할 군사인데 몸이 성하면 우리가 매우 불리하므로 부상병을 많이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간신들이 몰아냈다.    

 

  참고자료

 박엽은 광해군의 인척이며 평안감사로 강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의 재임시절 여진족이 우리 땅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인조반정 세력이 새 정부의 명나라의 인정을 빨리 받고 싶어서 그를 처단하였다 한다. 그는 축성과 군량비 확보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며 첩자를 잘 활용할 줄 알았다.

     

인조반정 때 최명길이 그의 처형을 반대하였으며 남한산성의 싸움 때 총지휘사인 김유에게 박엽이 살아 있었다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도 없었을 것이라 하였다. 


택리지에서도 평안도 백성들이 그에 대해 좋은 기억을 하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용골대의 염탐     


전쟁 분위기가 무르익자 용골대는 청태종의 선전포고문을 가지고 왔다.  포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희들은 세치 혓바닥으로 우리의 칼과 싸우겠다고 주장하는 자가 많음을 알고 있다. 


명필이 많아 글로 우리를 절단 내 버리겠다고 한다며? 또 산성이 많아 전쟁이 터지면 산성으로 숨어서 일 년이고 십 년이고 버틸 수 있다며? 우리는 너희를 포위한 후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겠다.

  

용골대

  청나라 초기 정치, 외교, 재정 전문가. 군인 이미지. 조선인 포로에 대해 고초나 부당한 대우를 하지 않음, 소현세자 부부를 정중히 대함. 김상헌과 최명길 신문할 때 억지 부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처리했다 함.  

   

▪평안감사와 용골대   

  

용골대가 황해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대국으로부터 경마 시합을 하자는 요구가 들어왔다. 박엽이 그를 임시 비장으로 기용하였다. 박엽이 용골대에게 묘책을 물으니 동지설상에 하라 하였다.


 동지가 가까워지자 대동강물이 얼었다. 이 때야 경마 시합을 하는데 대국인은 두 발자국도 못 나가 미끄러졌으나 평안감사는 편자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승리를 하였다.      


또 대국에서 동아줄 재를 모양 그대로 가져오라는 요구가 왔다. 임시 비장에게 물으니 소달구지에 큰 통을 싣고 그 안에 동아줄을 틀어넣어 북경에 가서 줄을 태우라고 하였다. 과연 그렇게 하니 동아줄 모양의 재를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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