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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밤 걷기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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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혜 Aug 25. 2024

밤 걷기

9

  아이는 계속 울었다. 나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아이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이를 올려다보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아이가 울다가 한 번씩 엄마를 부를 때마다 허둥거리며 아이를 다독였다. 

우는 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아이 엄마는 어디에 갔을까. 아이를 데리고 엄마를 찾으러 나가야 하나. 집 안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엄마를 기다리게 해야 하나. 우리 집으로 데려갈 수도 없고. 아이 아빠는 또 어디 있는 거야. 아이가 한 번 더 엄마를 불렀다. 

  “그래, 엄마.”

  아이의 말을 내 입으로 따라 말했다. 

  오래전 아빠가 갑자기 사라진 밤에 엄마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전화했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당황했겠지. 오빠가 일본에 나가서 살게 된 후 엄마는 나에게 더 의지했다. 아빠의 상태에 대해서도 오빠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나에게는 다 전해 주었다. 아빠는 이제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다. 엄마를 자신을 돌봐 주는 사람으로 여긴다. 전쟁에 파병되기 이전에 함께했던 추억을 말해 주면 화숙이 너냐고 반가워하다가도 그 기억을 지금의 엄마와는 연결하지 못한다고. 그런 말을 전하면서 엄마가 울었다. 

  하루는 엄마와 통화하던 중에 이웃 남자가 국제결혼을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베트남 여자가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여자가 인사하러 집에 들렀을 때 아빠는 밝게 인사를 받았다고 엄마는 말했다. 

  “니 아빠는 죄다 잊었으니까. 나는 심장이 다 벌렁거리고. 고개를 못 들겠더라만.”

  네 달쯤 지났을 땐 이웃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애를 내가 또 어떻게 봐야 하냐. 네 아빠 월남에서 돌아오고 한참 지나서도 우린 애 가질 엄두를 못 냈어. 겁이 나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가벼워지질 않는다고, 엄마는 한참 뒤에야 말을 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쯤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런 얘기가 나오면 나는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엄마와 아빠가 아직도 짊어지고 있는 전쟁의 상처가 왜인지 나 때문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일곱 살 아이 같은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했는지 모르겠어, 엄마.”

  그렇지만 오늘에 와서 아빠가 사라진 날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나에게 전화했을지 짐작해 보면 내가 그렇게 무력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엄마에게는 의지할 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또 엄마를 찾았다. 몸을 일으켜 아이 앞으로 더 다가갔다. 

  “곧 오실 거야, 같이 기다리자.”

  아이는 울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골목 안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갈색 털을 가진 고양이였다. 나는 고양이를 멀리 쫓아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고양이가 가까이 오자 아이는 서서히 울음을 그쳤다. 아이는 철문 안으로 들어가 손에 그릇을 들고 나왔다. 그릇에 사료가 담겨 있었다. 

  “얘가 자꾸 와서 우니까 사료를 사 줬어, 엄마가.”

  나는 먹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그릇을 내려놓자 고양이는 편안해 보이는 자세로 그릇에 얼굴을 넣었다.

  “올 거야, 엄마.”

  아이는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무슨 말이니?”

  아이는 자기 엄마가 일을 마치고 들어와 우는 날이면 이번처럼 밤에 자다가 일어나 나갈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가 잠에서 깨기 전에 돌아와 아이 옆에 다시 눕는다고 했다. 잠든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너는 아프면 안 된다며 혼잣말한다고.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게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아이 앞에서 기색을 내비칠 수 없었다. 

  “그러면 왜 밖에 나와서 울고 있었어?”

  “고양이를 기다렸어. 밥 주려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고양이가 그릇에서 고개를 들었고 아이가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얼굴 위로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배가 쑤시듯 아파서 아랫배를 문질렀다. 나는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더워서인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배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으니 아이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아파?”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아이가 그릇을 집 안에 들여놓고 다시 나왔다. 집은 너무 덥다면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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