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신는 마음으로

by 구기자

신발.

신발을 선물하면 애인이 도망간다는 속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콩쥐의 꽃신…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신발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미궁 속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영웅 테세우스는, 그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숨겨둔 신발이라는 징표로 자신의 혈통을 증명한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를 보아도 신발을 둘러싼 이야기는 늘 존재해 왔다. 아마도 신발이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신발을 신는다. 어쩌면 태어나서부터 ‘신발’이라는 작은 우주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역시 신발장을 열고 — 사실은 현관에서 애처롭게 뒹굴고 있을 때가 더 많다 — 옷차림에 맞는 편한 신발을 골랐다. 칠순을 바라보는 엄마는 몇 해 전부터 신발은 예쁜 것보다 편해야 최고라고 하신다. 그래도 예순 께까지는 앞코가 뾰족한 하이힐,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져 조명 아래에서 유난히 더 빛나는 부츠를 신으며 멋쟁이 스타일을 고집하시더니, 내년에는 숫제 보트처럼 생긴 투박한 신발이라도 신으실 기세다. 불편함이야말로 멋쟁이의 기세라며 기꺼이 감수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실용성만을 강조하는 패션을 고수하시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간 세월이 무심해 코끝이 시리다.


돌이켜보면 삶은 신발과 꽤 닮아있다. 우리는 신발을 고를 때 오늘 입은 옷과 어울리는지, 외출의 목적, 날씨와 계절 따위를 고려한다. 이처럼 삶에서도 매 순간 ‘지금의 나’를 이루는 그 모든 선택을 한다. 오래 신은 신발에는 발볼, 걸음걸이, 체중이 실리는 방향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가 즐겨 신는 신발들을 보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낡아있다. 아이가 아기였을 때 아기띠는 앞에, 기저귀 가방은 뒤에 메고 걷다 보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걷는다는 것이 팔자걸음이 되어 늘 바깥쪽 굽부터 닳는다. 그런가 하면 보폭은 좁아 구두끼리 서로 스쳐 구두 안쪽은 스크래치 나있다. 깔창은 내 무게 하중을 견뎌 내 발 모양대로 변형되어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몸에 잘 맞는 옷을 걸친 것처럼 편해서 오히려 좋다. 그래서인지 늘 손이 가는 (발이 가는이라고 해야 하나) 신발은 정해져 있다. 오래 신어서 낡은 신발처럼 내 삶도 지나온 세월을 거쳐 조금씩 달라진 얼굴을 가졌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만의 사고, 감정,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나만의 흔적이 드러난다. 때로는 나이가 들며 젊었을 적 치기 어린 분노 앞에서 이젠 세 번쯤은 심호흡할 수 있는 여유가 뿌듯해질 때도 있지만, 성격이 급한 걸 알면서도 미리 말을 내뱉고는 아차 싶은, 고치고 싶지만 습관으로 굳혀져 늘 반성하는 버릇들도 있다. 처음엔 별 것 아니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나의 성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래 신은 신발에는 주인의 발 모양이 배는 것처럼, 삶도 결국 ‘나다움’을 조금씩 담아내며 길들여진다. 때때로 불편한 신발을 오래 신다 보면 내 발에 맞춰질 때가 있듯, 삶 또한 늘 내가 맞춰가는 듯해도 어느 순간은 삶이 내게 맞춰주는 때도 있다.


나는 신발에 난 작은 흠집과 닳은 굽 뒤에 숨어있는 삶의 흔적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셜록 홈즈의 추리 방식을 좋아한다. 소설 속 홈즈는 상대가 건네는 명함이나 증언보다 늘 먼저 신발을 본다. 그에게 신발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말이 없는 증인’이자, 가장 정직한 단서다. 그의 방식으로 삶을 본다면, 그는 내 신발을 들여다보며 아마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자네, 지독하게 게으르구먼.” (너무나 맞는 말!)

“외로움은 타면서 방구석에 박혀있고.” (외출 안 함)

“그러다 큰맘 먹고 나갔다 하면 아주 신나게 놀고 오고.” (춤추다 생긴 스크래치 때문에 반박불가)


이렇듯 나의 작은 습관, 선택들이 나를 때로는 고립되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그것은 결코 큰 사건의 발생이나 거대한 심경의 변화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삶은 거창한 결심보다, 당장 오늘의 발걸음을 어떻게 내딛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러니 멈춰 서서 자신에게 물어봐도 좋을 것이다. 때로는 불편해진 신발을 버리는 것처럼, 익숙함을 벗는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닌지. 오래 신어 더 편해지는 신발처럼, 오래 살아 더 나다워지는 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그래서 오늘도 신발을 신는다. 어디로 갈지 완벽히 정하지 못했음에도, 그저 오늘의 몸을 이끌어 줄 한 켤레를 골라 신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