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얼굴이랑 목에 점 진짜 많다!"
"그게 왜?" (풀던 학습지나 마저 풀라고!)
"엄마 점이 부러워. 화려해 보이잖아!"
엄마라면 모든 게 궁금한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한다. 깨순이, 점순이, 깨보리... 유난히 점이 많아 어렸을 적 붙었던 내 별명이다. 집세도 내지 않고 내 왼쪽 목 한 켠에 불법점거한 이 점들은 오랜 시간 내 콤플렉스였다. 누군가 요새 점 빼는 데 얼마 하지도 않는데 왜 안 빼냐고 하면, 옆에 앉아있던 이는 얼굴도 아니고 목에 있는 점을 빼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지 아냐고 두 팔 걷고 말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놔두다 보니 어느새 이것들이 점점 더 몸집을 불리더니 종내는 번식까지 한다. 안 그래도 입 옆으로 깊어가는 주름이 속상한데, 그 밑으로 물감이라도 튄 마냥 얼룩덜룩하기까지 하니 숙주의 원망에도 속절없이 이것들은 여전히 영역 표시 중이다.
속상한 마음도 모르고 남의 아픈 곳을 쿡쿡 찔러대니 입안이 쓴데, 내 점을 부럽다고 말하다니. 아이는 진흙 속에 파묻힌 연꽃을 알아보는 마음을 지녔다.
아이에게 배우는 삶의 깨달음은 늘 이런 식이다. 나는 부모니까 당연히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돌아보면 배우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아이의 천천함에 비로소 속도를 맞출 때, 아이의 끝없는 질문에 심드렁하니 답하다 가장 평범한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느낄 때, 나는 깨닫는다.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늘 나 자신이었다. 아이의 문장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 의도하지 않은 대답은 늘 나의 무거운 생각을 가볍게 뒤집는다.
거울을 보니 과연... 점이 없었다면 그저 목처럼 생긴 목이다. 점이 있어서 누군가는 내게 말 한마디 건네고,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숙제처럼 느껴지던 점이 달리 보여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이 정도면, 액세서리 삼아 목에 품고 있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