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안'해보기

by 구기자

얼마 전 소망하던 코타츠를 들였다.

거실은 아이 물건으로 점령당해 뭐라도 버려야 할 판이었다.

겨울마다 망설이던 게 몇 해던가. 그래, 일단 저지르면 뭐라도 버리게 되겠지. 예상대로 뭐라도 버리게 되어 코타츠는 거실 한복판ㅡ이라곤 했지만 소파에 등을 기대는 게 국룰이므로ㅡ에 자리 잡았다.

코뮤다 삼각지대


며칠 지나니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

왜 좀 더 일찍 들이지 않았을까..

이 따끈한 낙원에서 나가는 게 서러워 실제로 끙끙 앓는 소리가 나온다. 그러다 보면 최근에 시작한 미라클모닝이 무색하게 코타츠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오전이 지나가는 것이다. 미라클모닝으로 하루를 씹어먹겠다는 다짐은 어디 가고 어느새 코타츠 안에 갇혀 귤이나 씹어먹고 있다.


이런 나 자신이 한심해질 때 즈음엔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다 종내는 꾸짖는 한차례 소란을 떨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비척비척.. 학원 가기 전 늘 보던 아이의 발걸음이다.

'아, 나는 정말 구제불능인가..'

하지만 곧 죄책감의 멱살을 붙잡고 당당히 선언한다.

'오늘은 네시반 작전이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내 엉덩이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책 대신 만화책을 준비한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야심으로 가득 찬 캔맥주를 꺼낸다.

오후 네시반, 하품이 나오는 나른한 오후. 나는 의식적으로 카랑카랑한 캔맥주의 시원함을 기대하며 이미 만족한 듯한 스냅으로 맥주를 딴다. 기대 이상의 짜릿한 청량감은 식도를 마비시킨다. 이건 단순히 알코올 섭취가 아니다.

성스러운 의식이다.


"성스러운 의식"에 죄책감은 한 방울도 용납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습다. 만화책 좀 보고 맥주 좀 마신다고 인생이 당장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스스로를 옥죄었을까. 가끔은 '갓생'보다 '걍생'이 필요한 것을. 노을이 지면 밤이 오듯, 내 기력도 저물 때가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맥주 잔도 비었으니 다시 코타츠 속으로 기어 들어갈 시간이다. 만화책 다음 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오늘의 내가 이렇게 행복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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