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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뮈 Feb 19. 2023

단일성과 무한성의 관계

김혜원 작가의 '밝은 방' 전시를 보고

당연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닫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수없이 다치고 아프며 익숙했던 일상의 습관들이 무너져 내릴 때, 평범한 하루는 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실은 그렇게 일상이 멈춘 시간을 통해 드러났다. 사물과 사람, 그리고 나, 모든 관계는 멈춰버린 시간을 통해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에 안주했던, 위험한 믿음을 알게 해 주었다.


김혜원 작가의 작품들을 마주하면 어린 시절의 앨범을 꺼내 펼쳐보듯 애틋한 기억들을 더듬게 된다. 나도 가지고 있던 사물, 나도 지나쳤던 공간, 나도 보았던 풍경 등은 작가의 시선에 의해 확대되었다. 오래전 나도 가지고 있던 악보, 나도 보았던 책 커버, 아버지가 키우셨던 그 화초, 내 시선을 끌지 못했던 특별하지 않은 공간의 구석들... 모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대상들이다. 각각의 대상은 작가에 의해 클로즈업되고 개별적으로 다루어졌지만 오래된 앨범 속 나란히 붙어있는 사진들처럼 묻혀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김혜원 작가는 어떤 대상에 익숙해진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품 속 단일한 대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에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내러티브를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익숙한 대상 너머에 있을 무수한 사연들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이고 배려이며, 무한한 세계를 감상자에게 선물해 주는 여백을 의미한다.


진실은 멈추었을 때 드러난다. 익숙한 것들에 안주했던 나의 위태로운 믿음이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의 여백을 제공해 주었다.


단일성은 위험한 안주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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