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는 열차의 낭만을 싣고 도달한 여수
걷다 보면 그냥 알게 되는 스토리텔링
오랜만에 여수로 출장 간다. 코로나 이후 2년이 넘게 멀리 출장 가는 것을 자제했다. 코로나를 종식하고 일상의 삶이 회복되어야겠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탔다. 이내 졸음이 와서 졸다 눈떴다를 반복한다. 기차를 타면 영락없이 졸음이 온다. 아마 그 이유는 기차 바퀴에서 생기는 일정한 리듬의 기차소리 때문일 것이다. 옛날 기찻길은 여름철에 선로가 선팽창하여 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정한 길이마다 좁은 틈새를 두었다. 이것을 열이음매라 한다. 기차 바퀴가 이 틈새 위를 지나갈 때 덜거덩 거리는 소리가 난다. 요즘은 고속열차가 아닌 열차나, 전철을 타면 덜컹거리는 기차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는 잠을 오게 하지만 정겨운 소리다. 고속열차는 고속으로 달려야 해서 열이음매가 없다. 철로의 재질을 개선해서 여름의 날씨에도 큰 선팽창이 일어니지 않는다.
온 나라가 장마권에 들어서 지나는 강이며 하천은 온통 흙탕물이다. 그래도 오늘은 장마전선이 제주도 부근으로 내려가서 구름이 끼었지만 가끔 해가 얼굴을 내민다. 이제 초여름이 문턱을 넘었다. 여수행 ktx는 고속열차지만 느리다. 호남선 고속열차 선로는 직선이 아닌가 보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고속열차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차창 넘어 풍경에 옛정취가 뭇어난다. 논산을 지나니 이내 익산역이다. 여기서 고속열차는 여수행과 목포행을 분리한다. 삼남지방 중에서도 전라지방은 짙은 초록의 녹음을 자랑한다. 그만큼 미개발 지역이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나는 늘 전라도를 생태 전라라고 한다. 미래에는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수도권의 물질적 풍요는 언젠가 역풍을 맞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생태가 잘 보전된 지역의 가치를 알아볼 것이다.
남도의 풍경은 둥글둥글하다. 평야는 넓고 산들은 낮고 모나지 않았다. 어려서 형들을 따라 백운산의 끝자락에 자주 올라갔다. 산에서 나무하면서 본 풍경이 지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로 그 산 풍경이다. 가야산의 능선에 올라서면 그 너른 광양만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광양제철소가 되어 사라진 광양만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남도의 작은 국민학교에서 소풍을 가는 날이면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광양만이 내려다 보이는 얕은 야산 언덕은 많은 학생이 놀만큼 넓었다. 그때 광양만은 순천만과 거의 비슷했다. 광양만은 개발의 칼날을 피할 길이 없었다. 어머니가 20리 길을 넘게 걸어가서 광양만에서 조개와 게를 잡아오시던 바로 그 풍요의 광양만은 지금은 볼 수 없다. 남도의 바닷가에 올 때면 광양만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어둑한 여수의 밤바다에 도착했다. 낭만의 여수는 옛 남도의 모습을 떠 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