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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Jul 05. 2022

진화는 프랙탈을 알고 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자기 닮음과 프랙탈 이야기)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는 한때 큰 인기를 끌었으며 가수 조성모가 리메이크하여 또 큰 인기를 끌었다. 가사의 시작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로 시작한다. 가사는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노래지만, 이 가사를 들으면 과학자들은 어떤 기하 구조를 떠올린다. 가사에는 “가시나무 숲 같네~”와 같이 나무에 빗대어 그리움을 표현한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대지를 달구고 대지의 수분은 급속히 상승하여 커다란 적란운을 만든다. 작년인 듯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인천의 제2 외곽순환도로를 운전할 때 김포 쪽에서 엄청난 크기의 적란운이 다가오면서 먹장구름은 엄청난 숫자의 번개를 내리쳤다. 대지로 뻗어나가는 번개의 모습은 마치 나무를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나무, 번개, 콜리플라워, 신장의 혈관 구조, 허파꽈리 구조, 남해안 구불구불한 해안선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이나 문양에 숨어 있는 본질은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번개, 나무, 신장의 혈관 구조 등은 사실 자기 닮음(self-similarity)을 가진 구조이다. 자기 닮음 구조를 처음 깨달은 과학자는 브누아 망데브로(Benoit Mandelbrot, 1924-2010)였다. IBM 왓슨 연구소의 연구원이던 망델브로는 1967년에 Science 지에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나 길까? 통계적 자기 닮음과 분수 차원(How long is the coast of Britain? Statistical self-similarity and fractional dimension)”이란 논문을 출판했다. 사실 이 논문에서 자기 닮음에 대한 개념을 처음 제시했으며 분수 차원이란 이상한 개념을 제시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차원은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과 같이 정수 차원만 생각하는 것이 보통인데 분수는 실수(real number)인데 3/2=1.5 차원과 같은 실수 차원을 언급한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실수 차원은 나중에 프랙탈과 프랙탈 차원을 이야기할 때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오늘은 자기 닮음에 집중하도록 한다. 아일랜드의 시인 요나단 스위프트(Johathan Swift, 1667-1745)는 그의 시에서 자기 닮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쓴 시에 이런 시가 있다.          


     벼룩 등의 벼룩     


큰 벼룩 등을 작은 벼룩이 물고 있고,

그리고 작은 벼룩은 더 작은 벼룩이 물고 있고,

이것이 무한히 반복되네.    

 

그리고 큰 벼룩은 더 큰 벼룩을 물고 있고, 

더 큰 벼룩은 다시 더 큰 벼룩을 물고 있네,

이것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네.      


[그림 1] 큰 벼룩이 작은 벼룩을 물고 있고, 작은 벼룩은 더 작은 벼룩을 물고 있다. 이 과정은 크기가 작은 방향과 크기가 큰 방향 양쪽으로 무한히 반복된다. 벼룩의 등을 돋보기로 확대하면 똑같은 모습이 반복된다. 내 안에 내가 또 있는 모습이다.     


   스위프가 쓴 시를 보면 그림 1과 같이 벼룩의 등에 작은 벼룩이 물고 있어서 돋보기로 벼룩을 확대해 봤더니 작은 벼룩의 등을 더 작은 벼룩이 물고 있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더 작은 크기의 방향으로 이 모습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림 1의 벼룩은 사실 더 큰 벼룩을 물고 있었고, 더 큰 벼룩은 더욱더 큰 벼룩을 물고 있었다. 벼룩의 크기가 더 커지는 방향으로 등위의 벼룩의 모습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었다. 이 시에 자기 닮음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프랙탈(fractal, 프랙털)은 바로 이러한 자기 닮음을 가진 구조를 말한다. 프랙탈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자기 닮음과 실수 차원을 가진 구조”를 말한다. 실수 차원인 프랙탈 차원은 다음 기회에 얘기해 보도록 한다. 돋보기로 벼룩의 등을 보는 것은 해상도(resolution)를 바꾸는 것이다. 프랙탈의 구조는 맨눈으로 보던, 돋보기로 보던, 현미경으로 보던 그 모습이 똑같다. 해상도를 바꾸는 것을 우리는 축척(scale)을 바꾼다고 한다. 자기 닮음은 축척의 변화에 대해서 그 모습이 불변인 스케일 불변성(scale-invariance)의 성질을 가지는 구조이다.     



[그림 2] 시얼핀스키 개스킷 프랙탈. 이 프랙탈의 일부를 2배 확대하면 정확히 원래 모습과 같고, 차원이 log3/log2=1.585....인 구조이다.    

 

   그림 2는 폴란드 수학자 바츠와프 시얼핀스키(Waclaw Sierpinski, 1882-1969)가 처음 생각한 구조이다. 이 구조는 처음에 속이 꽉 찬 삼각형에서 시작한다. 정삼각형의 세 변의 중점에 연결선을 그으면 그림과 같은 큰 역삼각형이 형성된다. 이 역삼각형을 잘라 버린다. 남은 세 개의 정삼각형에서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역삼각형 부분이 제거된 개스킷(구멍이 숭숭 뚫린 구조물)이 형성된다. 시얼핀스키는 이 구조가 자기 닮음 구조인지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런 구조를 제안했다. 그림 2에서 동그라미 부분을 2배 확대하면 그 모습이 확대하기 전의 모습과 완벽하게 같다. 내 안에 내가 정확히 또 있는 구조이다. 이것이 자기 닮음의 본질이다. 즉, 축척에 대해서 그 구조가 변하지 않는 구조를 말한다.



                                    진화는 프랙탈의 이점을 알고 있었다!     


  시얼핀스키 개스킷은 완벽한 자기 닮음인 수학적 사상(mapping)을 가진 수학적 프랙탈(mathematical fractal)이다. 그런데 자연 현상에 자기 닮음 구조를 가진 구조가 많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프랙탈은 완벽한 수학적 자기 닮음을 갖지 못하고 통계적으로 자기 닮음을 유지한다. 망델브로가 자신의 사이언스 논문에서 통계적 자기 닮음(statistical self-similarity)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통계적 자기 닮음을 가진 프랙탈을 통계적 프랙탈(statistical fractal)이라 한다.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랙탈 구조는 구불구불한 해안선, 번개, 나무, 나무뿌리, 강줄기 모습, 산맥의 모습, 구름, 에어로졸 응집체, 사람의 신장 혈관의 모습, 주가지수 시계열의 변동 구조 등 수없이 많은 곳에 존재한다.     


     

[그림 3] 신장의 혈관 구조. 신장의 혈관 구조는 통계적 프랙탈이다. 진화과정에서 자연선택은 왜 이런 신장 구조를 선택했을까?     



   그림 3은 사람 신장에 조영제를 넣어서 삼차원의 혈관 구조를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마치 무성한 나무처럼 생겼다. 신장은 왜 이런 구조를 가졌을까? 프랙탈의 특징 중의 하나는 유한한 프랙탈 구조에서 프랙탈의 길이 또는 표면적을 측정해 보면,  길이 또는 표면적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신장의 혈관 구조가 정육면체처럼 생겼다면 그 표면적은 유한하다. 그런데 그림3과 같이 나뭇가지 구조의 프랙탈 구조를 형성하면 그 표면적의 넓이는 정육면체보다 훨씬 더 크다. 신장의 기능이 인체의 노폐물을 인체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므로 신장의 표면적이 넓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데 유한한 부피에서 큰 표면적을 가지는 구조가 프랙탈이다. 자연의 진화는 프랙탈이 넓은 표면적을 가진다는 사실을 자연선택 과정에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신장 혈관의 구조가 프랙탈이 아닌 개체와 프랙탈인 개체의 생존력은 프랙탈일 때 더 컸다. 진화가 거듭할수록 신장의 구조가 프랙탈인 개체가 진화의 승자가 되었다. 자연이 알고 있던 프랙탈 구조를 인류는 20세기 중순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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