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알스-걷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스토리텔링
매년 5월이면 적어도 강화 나들길 한 코스는 걷는다. 5월은 신록이 더욱 짇어지면서 온 사방에서 꽃이 지천으로 핀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다. 오늘은 강화 나들길 20코스의 절반인 분오리 돈대에서 갯벌센터까지 걸었다. 20코스는 “갯벌 보러 가는 길”이다. 20코스는 화도공영 주차장까지 23.5km 7시간 30분 코스지만, 그 절반만 걸었다. 예전에 7코스와 겹치는 화도 공영주차장에서 갯벌센터까지 걸었기 때문에 이번에 절반만 걷는다. 거의 모든 길이 바닷가를 따라 걷기 때문에 강화에 넓게 펼쳐진 갯벌을 보면서 걷는다.
분오리 돈대는 매번 지나쳐 갔는데 오늘은 돈대에 올라본다. 동막해수욕장 옆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강화 남단으로 들어오는 배를 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상륙하기 어려운 곳이다. 토요일이라 동막해수욕장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가족들이 재미있게 갯벌을 즐기고 있다. 갯벌에 들어갔다 나오면 마치 검은색 장화를 신은 것 같다. 젊은 아빠가 발을 들어 보이며 아빠 장화를 보란다. 물이 막 빠져나가서 갯것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작은 게들도 구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동막해수욕장을 벗어나자 길은 바닷가 갯벌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다. 바닷물이 가득 찼을 때에는 걷기 어렵겠다. 바닷가에 바짝 지어진 펜션의 가장자리를 걷기도 한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꽃이 갯메꽃이다. 메꽃은 5월이면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꽃이다. 육지에서 보는 메꽃의 잎사귀는 길쭉하고 갸름한데, 갯메꽃은 그림 1과 같이 둥그스럼하게 생겼다. 갯메꽃은 모래에서 잘 자라는 사구식물이고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이기 때문에 잘 보존해야겠다.
[그림 1] 강화 해안에서 만난 갯메꽃. 분홍색 갯메꽃이 오각형을 이루며 앙증맞게 피어 있다.
두 번째 만난 돈대가 송곶돈대다. 강화의 서쪽과 북쪽의 돈대는 원형이 잘 남아서 복원된 돈대가 많지만, 강화 남단과 서쪽의 돈대는 허물지고 복원하지 않은 돈대가 많다. 송곶돈대도 거의 돌무지기 수준이다. 송곶돈대를 지나자 제방길이고 바로 옆에 흥왕낚시터가 길게 뻗어 있다. 이곳의 제방길은 모두 간척지의 둑이다. 간척하기 전에는 마니산 아래 찻길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갔을 것이다. 제방 위에는 갯완두, 조뱅이, 애기똥풀, 민들레, 흰민들레, 산괴불주머니, 엉겅퀴, 갯질경이 등이 앞 다투어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림 2] 강화 갯벌 보러 가는 길의 제방길에 피어 있는 엉겅퀴, 산괴불주머니, 갯완두, 조뱅이꽃 (좌상단부터 시계방향 순).
갯벌 보러 가는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듯하다. 흥왕저수지 옆의 제방길을 걸을 땐 조심해야 한다. 제방길이 좁아 잠깐 한눈을 팔면 바닷 쪽으로 실족하기 쉽다. 제방이 상당히 높아서 조심해야 한다. 제방의 끝에는 갑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갑문 위를 지나가지 못하게 철망 문을 닫아버렸다. 제방을 되돌아갈 수는 없다. 제방길은 거의 1km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방 아래로 늘어진 줄이 있어 붙잡고 내려갔다. 바로 미루지 선착장이지만 너무 작아 배도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미루지 돈대가 있다고 하지만 허물어져 잘 보이지 않는다.
다시 잠깐 동안 바닷가를 따라 걷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 뜻하지 않은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그림 3과 같이 파도와 바람에 침식된 시루떡 모양의 지층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층층이 쌓인 각 지층은 수백만 년에 걸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지층사이를 관입하고 있는 나무뿌리 같은 흰색 암석이 이채롭다. 지질학에 좀 더 지식이 있으면 지층을 더 재미나게 해석할 수 있으나 그럴 지식이 부족함이 아쉽다.
[그림 3] 바닷가에 형성된 지층의 모습. 여러 암석층이 시루떡처럼 쌓여서 서로 구분된다. 하나의 층이 형성될 때 몇 백만 년을 걸렸을 것이다.
짧은 암석 길을 지나면 다시 제방길이다. 이번 제방은 제법 넓어서 걷기 좋다. 이곳에서 5월의 강화를 걷다가 만나고 싶은 손님을 만나게 되었다. 강화 나들길 2코스 호국 돈대 길을 걷을 때 타래붓꽃을 처음 보았다. 그땐 더 큰 모둠의 타래를 짓고 있는 타래붓꽃이 점점이 피어 있었다. 여기서 만난 타래붓꽃의 모둠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자신이 다른 붓꽃 하고 다르다는 듯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자꾸 타래붓꽃에 눈이 가서 빨리 걸을 수가 없다. 강화를 다니다 보면 자신의 정원에 타래붓꽃을 심어 놓은 곳도 더러 볼 수 있다. 그래도 자연 상태로 바닷가에 피어난 타래붓꽃은 그대로의 모습이 수수해서 좋다. 이번 강화 나들길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여차리 아래의 형성된 간석지는 미루지 돈대에서 갯벌센터 아래까지 이어져 있다. 제방길 옆에 자연 상태의 연못에는 한 무리의 새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무슨 새인지 궁금해서 자세히 보니 연신 부리를 좌우로 젖고 있는 저어새 무리다. 이렇게 많은 저어새가 함께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인천 송도 갯벌에서 보고 다시 보게 되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멸종 위기 종인 저어새가 편안하게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이 보기 좋다. 서해안 갯벌에서 저어새가 많이 번성했으면 좋겠다.
[그림 4] 강화 나들길에서 만난 진객 타래붓꽃. 연보라빛 꽃은 다른 붓꽃과 선명하게 구별된다.
분오리 돈대에서 갯벌센터까지 3시간 30분 코스라고 적혀 있었지만 우리는 3시간 만에 주파했다. 중간에 꽃사진 찍고, 잠깐 쉬기도 하고 지체했지만 단조로운 제방을 걷는 것이라 발걸음이 빨라진 탓이다. 갯벌센터는 지난번에 지나와 봤기 때문에 익숙하다.
다시 차를 세워둔 분오리 돈대까지 되돌아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작년에 강화 나들길 7코스를 걷을 때 새꾸지 마을 앞 버스 정류소에서 쉽게 카카오 택시를 불러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리 카카오 택시를 불러도 잡히는 택시가 없다. 강화 군내버스가 거의 1시간에 한 대씩 배차되어 있는데 시간표를 보니 40분쯤 후에 지나간다. 연신 카카오 택시를 불러보지만 감감 무속식이다. 우리가 버스 정류장에서 얼쩡거리는 것이 거슬렸던지 옆 펜션을 하는 젊은 사람이 나와서 말을 붙인다. 이곳은 외져서 택시도 잘 오지 않는단다. 버스도 주말이라 길이 막혀 제시간에 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심심했던지 갑자기 맡아서 하게 된 펜션 얘기며, 펜션에 얽매인 생활, 강화 생활의 불편한 점, 날씨 얘기를 혼자서 열심히 한다. 그래도 난 강화를 사랑한다. 조금 불편해도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다. 강화는 갯벌, 해안가, 섬, 내륙의 특성을 골고루 간직한 독특한 섬이다.
버스가 도착한다는 시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계속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겨우 선수포구에서 택시 한 대가 잡힌다. 15분이 걸린단다. 그래도 택시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을 감지덕지하며 택시를 기다리니 얼마 후에 택시가 왔다. 택시를 타고 분오리 돈대까지 오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내가 차를 몰 땐 이렇게 길이 구불구불한 줄 몰랐는데 강화 남단의 지방도로는 해안선의 모양대로 굽이굽이 돌아간다. 저녁이 다가오는데도 동막 해수욕장에는 사람이 더 많고, 주차하려는 차도 많다. 겨우 차를 세워둔 분오리 돈대에 도착하여 오늘의 강화 걷기를 끝낸다. 다시 올게 강화야!
2023년 5월 13일 강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