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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May 23. 2022

앰비언트 노이즈

시끄러운 카페에서 공부가 잘되는 이유


요즘 어딜 가나 멋진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며칠 전 강릉에 사는 지인을 만났는데 옛날에 방앗간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하여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지인에게 주말이라서 사람이 많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니란다. 카페가 하도 유명해져서 주중에도 손님이 많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유독 옆자리에서 컴퓨터를 켜고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학생은 무슨 발표 과제를 작성하고 있는 듯했는데 주위의 소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과제 작성에 열중하고 있었다. 요즘 이런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보다는 시끄러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온종일 공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끔 화장실을 갈 때는 핸드폰, 노트북, 책 등을 탁자 위에 그대로 놓아두고 그냥 간다. 아무도 없는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누가 집어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참 안전한 나라이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광경은 상상하기 어렵다. 주변이 시끄러워도 같이 앉아서 떠드는 사람들은 서로 얘기를 잘 들을 수 있다. 도떼기시장 같은 시끄러운 카페에서 공부가 잘되고, 대화도 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끼리 대화할 때 말에는 정보가 담겨있다. 반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의미 없는 소리는 잡음이다. 숲 속, 길거리, 카페 등 다양한 곳에서 소음을 들을 수 있다. 눈으로 볼 때 시각 정보 이외의 정보들은 시각 소음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인류의 진화를 생각해 보면 생존을 위해서 소음과 정보를 식별해 내야 했다. 사바나에서 사냥하던 인간들은 사냥감뿐만 아니라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초록의 풀숲이나 마른 덤불 속에 숨어 있는 사자나 호랑이를 식별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포식자의 정보를 풀숲이나 덤불의 배경 정보와 구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배경 정보는 무시하고 포식자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다. 반면 포식자는 더욱 배경에 녹아들어 가야 먹잇감을 쉽게 잡을 수 있어서 풀숲이나 덤불의 배경 색과 같은 털 색깔로 진화하였다. 물론 포식자와 사냥감은 서로 변화하면서 공진화하여 오늘날의 상태에 도달하였다. 배경 소음을 무시하는 진화의 산물은 오늘날 시끄러운 도시 문명에서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은 바로 배경 소음(background noise), 즉 앰비언트 노이즈(ambient noise)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가 초록색의 숲을 보고 있으면 눈의 피로가 풀리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빛의 앰비언트 노이즈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소음에 노출되어 있어서 마치 없는 것처럼 인식한다. 소음에 노출되어 있을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소리나 빛의 세기 스펙트럼(power spectrum)을 분석해 보면 다양한 형태의 노이즈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기 스펙트럼은 소리나 빛의 주파수에 에너지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나타낸다. 소리나 빛의 주파수를 f라 하자. 기타를 치거나 피리를 불면 특정한 주파수의 소리만 난다. 반면 노이즈에는 다양한 주파수가 섞여 있는데 그 세기는 대개 1/f^b로 줄어든다. 여기서 f^b는 f에 b 승했음을 뜻한다. 거의 모든 주파수에서 제멋대로의 세기를 가진 백색소음(white noise)은 b=0이다. 팬이 도는 소리, 방송이 나오지 않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채널 소리, 방열기에서 김새는 소리, 에어컨 소리는 백색소음의 예이다. 백색 잡음은 잠을 오게 하거나 집중력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색깔 잡음(color noise)에는 핑크 노이즈(pink noise), 브라운 노이즈(brown noise), 블루 노이즈(blue noise), 그린 노이즈(green noise), 그레이 노이즈(gray noise), 블랙 노이즈(black noise) 등 다양한 이름의 노이즈가 있다. 핑크 노이즈는 세기 스펙트럼이 1/f로 줄어들고 백색소음과 브라운 소음 사이의 소음이다. 즉, b=1인 잡음이 핑크 노이즈이다. 핑크 노이즈는 주파수가 한 옥타브 증가할 때 13dB씩 감소한다. 핑크 노이즈는 잎사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비가 내리는 소리, 바람 소리, 심장의 박동 소리에서 발생한다. 핑크 노이즈 역시 잠자는 것을 도와주며 깊은 잠을 자는 것을 도와준다 [1,2].   

       

   브라운 노이즈는 레드 노이즈(red noise)라고도 부르며 세기 스펙트럼에서 b=2인 노이즈이다. 즉, 세기 스펙트럼은 1/f^2로 줄어든다. 세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 천둥소리는 브라운 노이즈의 예이다. 브라운 노이즈는 깊은 수면과 안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랙 노이즈는 가끔 발생하는 강한 스파이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요한 상태의 노이즈이다. 세기 스펙트럼에서 b>2인 노이즈이다. 지진에서 나는 소리는 블랙 노이즈이다.     


   컬러 노이즈의 세기 스펙트럼이 1/f^b와 같은 멱함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컬러 노이즈는 복잡계의 특성을 나타낸다. 컬러 노이즈는 소리나 빛의 세기와 같은 시계열에 숨어 있는 자기 유사성인 프랙털 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프랙털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얘기할 것이다. 산, 산맥, 나무, 구름 등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구조가 프랙털 구조이며 멱함수 법칙을 내부 구조에 품고 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프랙털 구조, 백색소음, 칼라 노이즈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습득한 진화의 산물이다.    

      

1. N. A. Papalambros, et al. “Acoustic enhancement of sleep slow oscillations and concomitant memory improvement in older adults”, Front. Hum. Neurosci. 11, 109 2017.

2. J. Zhou, et al. “Pink noise: effect on complexity synchronization of brain activity and sleep consolidation”, J. Theor. Biol. 306, 68-7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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