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평생 욕심없이 살았다- 슬픈 포장지

곰비임비의 소소한 수다

by 포쇄별감


곰비 장례식 때문에 못 온다더니, 왔네.

임비 너무 피곤해서 그냥 가려다가 술 한 잔 더 하고 싶어서.

곰비 슬픈 장례식이었구나. 많이 울었어?

임비 아니, 그냥 기분이 가라앉네. 좀 이상했거든

곰비 어땠길래. 장례식이 다 그렇고 그렇지.


임비 종교 의식 없는 간단한 예식이었는데, 뭐랄까 좀 낯설고 이상했어. 아마 처음 보는 장례식이어서 그랬나 봐. 여태 내가 가본 장례식은 부주하고, 상주한데 절하고, 술상 앞에서 손님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나 하는 게 끝이었으니까.

곰비 새로운 장례식 풍경은 또 뭐야. 어쨌든 새로운 장례식이었다니 좋은 경험이었겠네.

임비 맞아. 나쁘지 않았어.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분 삶을 이야기 하더라고. 처음엔 좋았어. 마치 외국 영화에서 보던 장면 같기도 하고.

근데 갈수록 마음이 무겁고, 찜찜하더라고. 십 여년 전, 그 집에 갔을 때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곰비 도대체 무슨 기억이기에 그래.

임비 처음 그 집 현관 옆방에 들어갔거든. 방 가득 명패와 상패가 진열되어 있더라. 고인의 남편이자 오늘의 상주분 거였어. 공직이든 민간 조직에서든 꽤나 요직에 계셨던 분이니까. 소위 성공한 사람이었거든.

그 방을 구경하고 나오니, 밥이 차려져 있었어. 그 집안의 어른이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셨으니까 거절할 수 없었지. 정성스럽고, 격식 있는 밥상이었어.

나중에 그 집을 나오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돌아가신 분이 평생 시부모 봉양을 했대. 그런데 그 시부모가 삼시 세끼 갓 지은 밥에 항상 정갈하게 썬 김치에 집에서 양념해서 구운 김까지 모든 게 격식이 갖춰지지 않으면 상을 받지 않으셨다고 하더라고. 보온밥통에서 나온 밥은 혼이 나간 밥이라고 아예 안 드셨대.

곰비 혼이 나간 밥이란 말 처음 들어봐. 난 냉동실에서 나온 밥 전자렌지에 데워먹는데, 헐.

도대체 일 년 열두 달 갓 지은 밥으로 삼시 세끼를 올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임비 그러니까. 그런데 그런 분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한결같이 ‘효부’라는 말과 함께 ‘욕심없이 사셨다’ 고 하는데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졌어.

곰비 그래? 왜?

임비 그게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희생에 씌워진 아름다운 포장지처럼 느껴졌거든.

두 분이 캠퍼스 커플이었대. 그러니 젊었을 적 꿈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었을텐데, 평생 삼 시 세끼 밥만 지었다는 거잖아. 그러니 ‘욕심없이 살았다’는 말이 강요된 순응 같았어.

사실 난 여태 욕심없이 살았단 말이 사회에 봉사하고, 탐욕으로 번들거리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속상하더라니까.

곰비 요즘 우리는 그런 삶을 보면, “왜 그렇게 살아.” “네가 선택한 삶인데 어쩌라고.” 이러고 말잖아.

근데 네 말을 듣고 있자니 좀 속상하긴 하네. ‘욕심없이 살았다’라는 말이 가시 면류관 같고.

어차피 지금은 그렇게 사는 사람도 없어. 그러니 원래 가졌던 고귀한 삶에 대한 헌사로 간직해.

임비 그래야지. 하지만 이젠 주변에서 욕심없다는 사람을 다시 들여다보긴 할 것 같아. 그 욕심 없음이 고결한 선택인지 아니면 권리를 거절당한 삶인지 말이야. 열정페이처럼.

곰비 맞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베푼 호의를 권리처럼 누리고 사는지도 봐야겠네.

임비 맞아. 요즘 흔히 하는 말처럼 호의에 익숙해져서 권리처럼 누리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 볼 필요가 있는 거 같아. 오늘은 그 때 내가 받았던 그 정갈한 밥상이 고맙고, 미안하고, 슬프더라고.

곰비 그럼 오늘 그 분을 위해 한 잔 하자. 우린 그런 욕심 없는 삶은 거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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