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비임비의 소소한 대화
임비 기대지 마시오, 뭐, 이런 말을 가져왔어? 그냥 펑범한 경고문이잖아. 맨날 마주보는 엘리베이터에도 있고, 허약한 담장 등등 너무 많은 곳에 있는 말이잖아.
곰비 그래.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저 유리 가벽에도 써 있지. 그런데 문득 저 문구가 안전 문구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지 않아?
임비 그야 늘 있었던 거잖아. 엘리베이터도, 유리벽도 다 그런 말 붙어 있지. 괜히 감정 이입하지 마.
곰비 유리벽이 난 훈훈했던 시절의 인간이 아니야, 이렇게 외치는 것처럼 느꼈어. 엉뚱한 생각이지?
예전엔 그런 말 없어도 사람한테 기대는 게 자연스러웠잖아. 집 앞에 가게 아저씨, 옆집 아줌마, 같이 일하던 직장 동료들… 한 번 헛디뎌도, 누가 날 잡아주는 시대였는데.
지금은 누구 하나 넘어지면 그냥 구경하거나 피해 다니기 바빠. 심지어 엉뚱한 해코지 당할까봐 멀찌감치 피해버리고.
임비 뭐? 그런 건 상부상조, 품앗이 이런 게 살아있던, 말하자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지.
곰비 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그럴 만도 하다.
한자 ‘사람 인(人)’ 자, 기억나? 원래 사람이 서 있는 모습에서 따온 거지만, 사람이 서로 기댄 모습이라고, 사람은 그렇게 서로 기대면서 사는 거라고 의미를 부여한 걸 아직 기억하고 있거든. 서로의 무게를 나누고 견디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고. 근데 요즘은 아예 문 앞에서부터 ‘기대지 마시오’를 붙여두잖아.
임비 요즘엔 다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바쁘니까. 기대면 민폐지, 연대가 아니라.
곰비 예전엔 좀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마을 단위나 직장 단위에서 감싸주고 도와주기도 했잖아. 주로 농업기반으로 한 지역 사회에 평생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라든가 평생 직장이란 말이 통용되던 시절에 말이야. 그땐 내가 잠깐 헛발을 디뎌도 그 나락이 깊지 않았단 거지. 자연스럽게 형성된 연대감이 날 받쳐주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팬데믹 지나고 자영업 망한 사람들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중산층 무너지니까, 빈곤은 바로 옆 얘기가 됐어. 뿐이야, 불안이 바로 내 엉덩이 밑에 깔려 있다니까. 그러니 앉아도 편하지 않아.
임비 말하자면 불안의 시대란 말이잖아.
곰비 맞아. 낭만이 사치가 된 세상이 된 거지. 개별적인 성향 문제가 아니고, 불안한 시대가 낭만을 삼킨 거라고.
임비 그럼 지금 낭만은 어디에 있는 걸까.
곰비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사치품 코너에 있겠지.
임비 아냐. 최백호란 가수가 그러는데, 낭만은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들어있대.
곰비 그래? 낭만도 술독을 찾아 떠났다고? 흠, 충분히 그럴만 한데, 슬프군. 그럼 오늘 한 잔 하고 너에게 기대볼까.
임비 그래. 오늘만큼은 저 유리벽이 되고 싶진 않네. 클클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