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비 임비의 소소한 대화
임비 와, 이 말을 가져왔네. 나 지금 포털에 올라온 영상 보면서 화가 났었는데. 그 영상, 조작이 아니고 진짠가?
곰비 레바논에서 파티하는 영상 말하는 거야? 진짜든 아니든 나도 그것 때문에 가져왔어.
임비 맞아. 이란에서 이스라엘로 미사일이 날아가는 게 불꽃 놀이 같잖아. 그거 보면서 레바논의 어떤 사람들이 섹소폰 불면서 파티하는 거.
곰비 원래 인간의 삼 대 구경이 불구경, 물구경, 싸움구경이잖아. 그런데 밤하늘을 날아가는 미사일은 싸움구경과 불구경이 동시에 벌어지는 거니까 정말 구경할만 한 거지.
임비 뭐? 구경할만해? 야, 막 나가는구나. 인간의 삼대 구경?
곰비 직접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저 구경만 하는데 무슨 잘못이냐는 거, 원래 강 건너 불구경이란 게 그런거야. 나만 아니면 되는 거잖아.
근데 뭘 그렇게 정색을 해. 이 말을 내가 왜 가져왔겠어. 오늘은 너랑 나랑 화 내는 지점이 같다니까.
임비 그렇긴 하지. 근데 정말 나만 아니면 되는 건가? 갑자기 그 유명한 시가 생각나는데. 그게 뭐였지? 왜 이웃들이 다 잡혀가는데 모른 척 했다는 시. 그러다가 결국 어느 날 나치가 자기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는 시 있잖아.
곰비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그들이 왔을 때’란 시 말하는 거지?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임비 맞아. 그 시. 그렇다고 그걸 다 읊냐. 하여튼 고지식하긴.
곰비 그래. 그래도 고고한 지식은 있잖아.
암튼 이 시는 강 건너 불구경이란 것과 일맥상통하긴 하지. 방관자들에게 하는 아픈 외침이니까.
그런데 ‘그들이 나에게 닥치는’ 그 시기가 생각보다 늦지 않을 수 있고, 생각보다 더 아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임비 그럴 수 있지. 댓글도 봤어? 그 영상을 비난하는 사람들한테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인 사람 숫자는 더 많다고 하잖아.
그들의 파티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이고, 정당함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어.
보복은 기분 나쁜 통쾌함이잖아.
곰비 맞아. 근데 너 스데롯 시네마라고 들어봤어?
임비 처음 듣는 거야. 롯데 시네마 자회사야?
곰비 아, 그거면 좋았겠지만 아니야.
2014년 어느 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이 잘 보이는 스데롯 언덕으로 올라갔어.
임비. 아, 스데롯이 언덕 이름이었구나. 근데 내가 그 작은 나라에 있는 언덕 이름까지 알아야 해. 무슨 히말라야 산이나 로키 산맥도 아닌데.
곰비. 어쨌든 그들의 손에는 캠핑용 의자와 맥주, 팝콘이 들려있었지.
그들은 언덕에 앉아서 팔레스타인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불꽃놀이처럼 감상한 거야. 손뼉을 치고, 환호하면서.
임비 오, 오. 그래서 넌 지금 그 스데롯 시네마가 레바논에서 파티하는 거랑 어차피 피장파장이란 거야?
요즘 전략이랍시고 너도나도 사용하는 오류잖아. 내가 잘못했다고? 너도 예전에 그랬는데 왜? 이러면서. 어린애들 떼쓰는 것도 아니고, 참.
곰비. 시비 걸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봐, 그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했고, 민간인 150여명이 죽었던 날이야. 물론 그 이후엔 더 많은 죽음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죽고, 죽임을 당하고 있지.
그들의 술잔엔 팔레스타인을 향한 증오가 있었지. 지금 레바논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임비 결국 피장파장 오류잖아.
그리고 레바논 사람들 사이에는 환희와 통쾌함이 있었어. 파티였다고. 그래서 어이없었던 거야. 사람이 죽어나갈텐데 저렇게 즐거워도 되나 싶어서.
곰비 맙소사. 정말 환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건 증오의 그릇에 담긴 환희야. 스데롯 시네마에서 사람들이 마셨던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불꽃놀이처럼 감상하는 것을 덴마크의 신문 기자 <알란 소렌센>이 스데롯 시네마라고 이름을 붙인 거야.
바람의 방향은 바뀌기 마련이야.
그들은 나치에게 자신들이 희생당한 것을 수 십년에 걸쳐 온갖 매체를 통해 알리는데 열을 냈으면서,
정작 나치만큼이나 잔혹하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죽이잖아. 한편에선 그것을 술안주 삼아 구경하고.
임비 아무리 강 건너 일이이라 해도, 인격이 없는 국가가 하는 일이라 해도 좀 화난다.
곰비 그러게. 그런데 지금은 잔인한 지도자와 국가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건 나중으로 돌리자고. 그들은 강 건너 불 구경이 아니라, 직접 불을 지르는 자들이니까.
다시, 레바논의 섹소폰 불며 벌인 파티와 스데롯 시네마로 돌아오면, 절대 강 건너 불구경은 불 구경으로 끝날 수 없다는 거야.
바람의 방향은 바뀌니까. 방관자는 계속 방관자로 남을 수 없으니까.
임비 그래.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고, 피해자들한테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면에서 그들은 미사일을 날리는 가해자와 다를 바 없어.
강 건너 불 구경은 더는 방관자가 아니고 가해자야.
곰비 오늘은 너랑 나랑 합이 잘 맞는데, 참 씁쓸하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 같아서.
임비. 아, 이거야 말로 강 건너 불구경인 셈인가.
곰비. 아닐거야. 깨어있는 시민으로 남아있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니까. 조직된 시민은 잔인한 지도자 한 사람 보다 힘이 세잖아. 우린 그걸 가까이에서 보아온 사람들이고.
봐, 이런 일도 있어.
EU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에서 생산된 제품에 ‘이스라엘 산’ 대신 ‘이스라엘 산 아님’ ‘서안지구 산’이라고 라벨을 붙이게 했어.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 확산을 막으려는 거지. 시민들이 거기에 동참하길 바라면서.
누구든 깨어있어서 강 건너 불 구경하지 않겠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임비 아, 너무 미약해.
그래도 적벽대전에서 유비가 동남풍을 불러오듯이 우리도 강 건너에서 할 일이 있는 거네.
바람의 방향은 깨어있는 전 지구의 시민들이 바꿀 수 있다는 그 허약한 힘을 깨워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