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기름먹인 가죽이 부드럽다- 쥐구멍 앞의 거인

곰비 임비의 소소한 대화

by 포쇄별감


임비 무슨 뜻이야? 처음 듣는 말인데.

곰비 지난 번에 주제를 뇌물로 정했잖아. 네가 말한 뇌물이 윤활유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지.

임비 그래, 윤활유. 이왕이면 꼬순네 나는 것으로 팍팍 치면 안되나?

뇌물은 일타쌍핀데.

곰비 뭐? 무슨 일타쌍피야. 뇌물이 도랑치고 가재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하듯이 그렇게 멋진 일이란 거야?

임비 솔직히 멋진 일인지는 모르겠고. 자, 봐라. 보통 밥상을 차린 놈이 있고, 먹는 놈이 있어. 그럼 누가 살찌겠어?

곰비 ….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츳

임비 먹는 놈이 살찌지. 그런데 뇌물은 준 놈도 먹은 놈도 둘 다 살찐다니까. 얼마나 경제적이야. 아주 멋진 일이지. 무엇보다 뇌물은 요물이라 선물이었다가 뇌물로 둔갑되기도 해.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건데, 뇌물과 선물을 굳이굳이 구분하면서 빡빡하게 굴어야 되냐고.


곰비 그 경계, 수천 년 전에 이미 정리됐어. 수메르 점토판에 아주 명확하게. 깜짝 놀랄걸?

임비 뭐. 수메르면 기원전 4~5천년 전 아니야? 그때 무슨 뇌물이 있어. 사냥이나 하면서 겨우 살았을텐데. 불이나 제대로 피웠을라나. 그럼 사냥터 양보하라고 뇌물을 줬을라나?

곰비 에헤, 수메르라니까.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도시 있고, 학교 있고, 심지어 시험도 있었어. 성적 때문에 뇌물도 있었다니까?

임비 도시만 있으면 뇌물이 자동 탑재야? 그리고 뭐, 기원전 4, 5천 년 전에 시험 때문에 뇌물을 줘? 완전히 소설을 쓰시네.

곰비 소설이 아닌 게 놀랍지. 도시는 사람이 많아. 사람 많은 곳엔 경쟁 있고, 경쟁 있는 곳엔 뒷거래가 필수지.

책에서 읽은 건데, 어떤 학생이 반장한테 쓸데없이 맞고, 선생한테는 답 다 맞췄는데도 매 맞고…

그러니 이 아이는 당연히 학교에 가기 싫겠지. 그래서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어. “아버지, 제발 선생님께 뇌물 좀 주세요.”

임비 야, 요즘 애들도 그렇게 하지는 않아. 어디서 이상한 이야기를 읽고 왔어.

곰비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된다’란 책에서 읽은 거라니까.

임비 그래서 정말 그 아버지가 선생님한테 뇌물을 줬대?

곰비 당연하지. 그 아버지가 진짜 선생님 불러서 향유 바르고, 옷을 주고, 반지도 선물했어.

그랬더니 선생님 반응이 이래.

“오~ 넌 참 훌륭한 학생이구나. 아버지가 이렇게 많은 선물을 주시니 넌 이제 반장이 될 거야. 그리고 성적은 당연히 높은 점수를 받을 거야!” 이랬다는 거야.

임비 와, 정말 교육계의 막장 드라마네.

곰비 뇌물 이야기는 성경에도 나와. 잠언에 이르길, “뇌물은 어디로 향하든 형통케한다”고. 말하자면 뇌물은 만능열쇠고 통행권이란 거지.

임비 뇌물에는 하늘도 흔들린다는 거네. 그러니 그 열쇠 좀 복제 하고, 나눠 쓰면 안되나?

곰비 흠흠. 나눠 써? 그럼 뇌물이 아니라, 쿠폰이지. 그게 그렇게 일상적인 일이 되면 뇌물은 ‘예외적 통과증’이 아니라 ‘입장권’이 돼버리는 거야.

그게 뇌물의 무서운 점이지. 다 같이 윤활유를 바르면, 그건 윤활유가 아니라 기름범벅이 되는 거거든. 그럼 너무 미끄러워서 아무도 제대로 나아갈 수 없어.

임비 아, 갈수록 문제네.

곰비 더 큰 문제는 뇌물은 아주 쨍한 햇빛을 독점하는 거인이란 거야.

임비 봐, 뇌물이 필요하다니까. 약간의 뇌물이 오고 가는 세상은 얼마나 따뜻하고 여유로워. 꽉 막히지 않았잖아. 그리고 막말로 다 비슷한 조건과 수준이라면, 결정권자 입장에서는 뇌물 주는 놈이 낫지.

뻣뻣한 가죽을 어디다 쓸 거야. 부드러워야 가방도 만들고, 벨트도 만들지.

곰비 거인은 쨍한 햇볕에 타죽거나 아주 깊은 그늘을 만들겠지. 아니면 너무 부드러워진 가죽끈이 칭칭 목을 감거나.

임비 타죽을 정도로 주고 받을까.

그리고 그늘, 얼마나 좋아. 뜨거운 여름에 나무 그늘로 들어가 봐. 땀이 식으면서 숨도 편안해진다니까.

곰비 뭐든 탐욕은 조절이 어려워. 그게 부담인 줄 알면서도 받는다니까.

그러니 위가 빵꾸 나는지도 모르고 처먹지.

임비 설마 그 정도겠어.

곰비 언제나 설마가 사람 잡잖아. 뇌물은 먹는 순간 코가 꿰인다고. 그리고 이미 그걸 알아. 알면서도 먹는다니까.

임비 얼마나 매력적이면 그러겠어. 인간의 깊은 내면을 건드리는 건 아무나 못해. 그러니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죽 생존하는 거고.

곰비 그래. 그런데 콧줄이든 목줄이든 처먹은 놈 문제니까 그렇다치고. 그들이 만든 그늘이 더 큰 문제야.

임비 그늘이 다 그늘이지 별 그늘이 있나? 뇌물 받은 인간이 만든 그늘은 기름져?

곰비 위치가 문제야, 위치가. 대개 그들이 선 곳은 쥐구멍 앞이란 거야. 볕 들 날만 기다리고 있는 그 쥐구멍 말이야.

결국 뇌물은 쥐구멍 앞에 선 거인이라니까. 뇌물로 살찐 자가 막는 바람에 간간이 들던 볕은 안들지, 기름진 냄새는 팍팍 풍기는데 내 배는 들어간 게 없어서 쫄쫄 시냇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지.

임비 그럼 빨리 탈출해야지. 왜 그러고 있어. 그 알량한 구멍에서 볕들 날만 기다리는 것도 맘에 안드는데, 구멍까지 막혔으면 당장 탈출해야지.

곰비 게을러서 그런 줄 알아? 갈 곳도 머물 곳도 없으니까 그렇지.

심지어 그 거인은 자신이 쥐구멍을 틀어막고 선 괴물이란 생각도 못해. 자신의 노력에 뿌듯할 뿐이지.

임비 결국 그 쥐는 뒷구멍을 파겠네!

곰비 아님, 거인의 발목을 물거나.

어쨌든 둘 다 쥐구멍에 볕들 날 기다리는 것보다 더 험난하니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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