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봐-위상전한의 서늘함

곰비임비의 소소한 대화

by 포쇄별감

임비 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악담을 가져왔군.

곰비 행복한 악담이라. 맞는 말이네. 오늘은 퀴즈부터 내볼까? 이 말의 최초의 사례자는 누굴까?

임비 자기랑 똑닮은 자식 때문에 많이많이 힘들었던 사람이라, 음.

곰비 사람 아니고.

임비 사람 아니고? 흠. 그러니 알듯도 하고. 역대급 분노와 질투의 대마왕 아닌가?

곰비 분노와 질투의 대마왕이라니, 난 모르겠는데. 별명을 잘못 붙이면 테러 대상이 될 수도 있어. 종교잖아. 흐흐흐.

임비 녜녜. 조심해얍죠. 흐흐흐. 답은 나왔어. 그 분이 행복한 악담의 최초 사례자긴 하네. 창세기의 주인공. 맞지?

곰비 맞아. 창세기에 보면 야훼가 온갖 것을 다 만든 다음,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이러시지. 빛도 어둠도 세상 모든 동식물도 만들고 나서는 새삼 당신과 닮은 피조물을 만드셨는데, 얼마 뒤부터 사고를 치잖아. 하지 말란 짓 하고, 거짓말 하고, 핑계 대고, 심지어 손주 대에서는 질투하고 분노하더니 살인도 하고 말이야. 실제로 구약의 야훼는 질투, 잔인함, 완고함의 끝판왕이잖아.

임비 피조물이 자식으로 비약되긴 했지만, 그럴 듯 하네. 근데 이 말을 왜 가져왔어? 지난 번에 자식농사 맘대로 안 된다고 할 때도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이야기 했었잖아.

곰비 그런가? 미안. 오늘은 자식농사 이야기는 아니니까 봐줘라. 자리바꿈, 말하자면 위상전환의 무거움에 대해서 생각했거든. 우린 역지사지, 즉 입장바꿔 생각해 보란 말을 자주 하잖아. 하지만 이 말은 내 자리에서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거니까 순한 맛 충고야. 그에 비하면 아예 자리가 바뀌는 위상전환은 매운맛 현실이더라고. 자식에서 부모가 된 것처럼 말이야. 자식입장에서 부모 입장을 생각해 보는 것과 자식에서 부모가 되어 일을 겪는 것은 천지차이잖아.

임비 말하자면 역지사지는 몇 분짜리 체험판이고, 위상전환은 진짜 ‘겪는 거’란 얘기네. 아예 위치가 바뀐 거니까 차원이 다르지. 생각해 보면 이런 말을 했던 어른들이 자식 하나 올바로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

곰비 자, 너라면 너같은 자식 낳고 싶어?

임비 야, 나 정도면 괜찮지 않냐?

곰비 오, 결혼하면 열 명은 낳겠다 이거네.

임비 오버하지 말고. 어쨌든 위상전환은 역지사지에 비하면 수평적이기 보다는 수직적 변화잖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돌보는 위치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위치로 등등.

곰비 맞아. 그러니 좀 더 엄중하고 무겁잖아. 근데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이 자식에게 이런 말 하는 게 참 이상하다 싶지만, 이렇게까지 고민하면서 한 말이었다기 보다는 그저 관습적으로 쓴 말이었을테고. 살다보면 위상전환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잖아. 당장 우리만 해도 곧 우리 부모님들을 돌봐야 하는 시점이 다가올 것 같고.

임비 생각할수록 ‘너도 똑같은 자식 낳아 봐.’란 말이 행복한 악담 보다 무겁다는 생각이 드네.

곰비 사실은 그 말 자체가 아니라, 살면서 우리가 맞게 될 위상전환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물론 직원하다가 사장으로 바뀌는 거라면 무겁고 힘들어도 행복한 위상전환이지만, 그 반대 경우도 많으니까. 그러니 타인의 삶을 대하거나 판단할 기회가 있다면 역지사지 보다는 좀 더 무겁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

임비 난 싫어. 솔직히 타인의 삶을 그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더 한 것을 하라고? 난 그냥 나 생긴대로 살 거야. 나는 나니까. 뭘 알 수도 없는 미래에 내 위치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고 그래. 오버지.

내가 전철에서 중년 여자들이 하는 이야기 들은 게 있거든. 얘기를 해줄까?

곰비 또, 또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 본질을 흐리고 싶어서 화제 돌리는 거지.

임비 아니야. 위상전환 이야기야. 어떤 아주머니가 ‘늙어서 보라지. 이제 직장 그만 두고, 집에서 삼식이 하면 내가 받은 구박 다 돌려줄거야.’이러더라고. 앞에 이야기에서 남편이 좀 그 아주머니한테 깐깐하게 대한다는 이야기를 했었거든. 그러더니 결론이 그거야. 늙어서 삼식이 할 때 보자고. 그 아주머니 국민연금 많이 넣어놨대. 남편 연금 만큼은 아니어도, 그 돈으로 남편 눈치 안보고 여행다니고, 맛있는 거 사먹겠다고. 이것도 위상전환 아니야? 씁쓸한 위상전환.

곰비 그러게. 늙어서 보지 말고, 지금 어떻게 해 보지, 쯧. 근데 난 엄마가 가끔 편찮으셔서 그런지 내가 엄마를 돌봐야 하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로 위치가 전환될까봐 조금 걱정되기도 해. 부모님이 들었던 우산을 내가 들어야 할 때가 오고 있는 거 같아서.

벌써부터 뒷목이 서늘해진다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