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이 시대의 난제

곰비임비의 소소한 대화

by 포쇄별감


임비 흠, SNS 전성시대에 이게 가능한 이야긴가. 다들 자신이 오늘 무얼 먹었는지도 떠들어야 그럴 듯해 보이는 시댄데, 넌 트랜드를 몰라도 너무 몰라.

곰비 허, 뭐 그렇게 고깝게 말하고 그래. 네가 그러니까 이 말에 권위를 좀 실어주고 싶은데. 이 말을 누가 했는지 알아?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이 한 말이야. <잠언> 17장 28절에 나오는 말이라니까.

임비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니라.’ 허, 한 술 더 떴네. 그래도 참, 구닥다리 조언이다.

곰비 조언에 최신 트렌드가 있고, 구닥다리가 있다는 네 말, 참 신박하다. 내가 이 말을 가져온 것은 성경에서처럼 언행을 조심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잠잠하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서야. 우리 속담에도 ‘모든 화는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잖아. ‘설화’라는 말도 있고. 그래서 ‘가만 있다’를 말하기, 물론 요즘엔 손가락 놀리기와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보고 싶더라고. 말을 잘하는 것과 많이 하는 것은 다르니까. 요즘엔 SNS에 대고 아무 말이나 떠드는 것이 짜증나는데, 한 술 더 뜨는 건 유명인이 떠들면 공적이 채널이 이것을 다시 증폭시키더라고. 이게 맞는 건가? 개인채널과 공적인 채널과의 경계도 애매해지고.

임비 떠든다, 지껄인다, 라는 말에 이미 가치관이 들어 있어서 거북해. 떠들긴 뭘 떠들고, 뭘 지껄여. 목적이야 다양하겠지만,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거야. 옛날처럼 표현 매체가 폐쇄적이지 않으니까 좀 더 쉽게 접근할 뿐이고. 공적인 채널의 폐쇄성을 보완해주는데 왜, 뭐가 문제야. 심지어 트럼프를 비롯한 요즘 정치인들은 sns에 대고 정책 이야기도 하잖아. 시대가 그래.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다들 하니까 한다고. 소소한 대화처럼. 그리고 개인 채널은 돈이 된다고. 그들은 그게 돈벌이야.

곰비 그래. 네 말이 맞아. 아프리카 티브이나 유튜브 등은 상업적인 영역으로 넘어갔지. 그래서 일부러 과격하거나 이상한 발언을 하는 냥아치들이 많다는 것도 알아. 그렇게 더럽게 돈 버는 게 이유라면 뭐라 하겠어. 나름 돈버는 방법으로 계획된 것일텐데.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값을 치르겠지. 하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부화뇌동해서 함부로 나불거리지 말라고. 그것 역시 언젠가는 값을 치르니까.

임비 오, 나불댄다, 지껄인다, 떠들어댄다, 너야 말로 아주 입이 과격하게 터졌네.

곰비 내 말을 자르지 말지. 들어보라고. 어떤 이슈에 대해서든, 확실한 근거가 있거나 철학적 바탕이 있다면 그건 주장과 의견제시지. 하지만 유명인들 기사에 댓글 날리듯이 기분 내키는 대로 떠들어 대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건 좀 신중하자고. 심지어 내 일인데도 입 다물고 있어야 할 때도 있어. SNS에서 떠드는 사람들은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고 하면, 그 먼지 색깔이 뿌옇더라, 벌겋더라, 로 또 한바탕 이야기판이 벌어진다니까. 그러니 아무리 억울해도 잠시 그냥 냅두는 것도 필요해.

임비 작년에 우리 동창 단톡방에서 있었던 일 말하고 싶은 거야? 그때도 너는 난 아니라고 딱 한 마디 하고 끝이었잖아. 겨우 진실이 밝혀졌기 망정이지, 어쩔 뻔 봤어. 가만 있으면 가마니로 보여서 더 떠들어. 그게 sns에서 사는 입들이야. 근데 가만 있으라고? 난 절대 못해. 요즘은 오프라인에서 이야기 하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이야기 하는 게 더 많을 걸? 게다가 인삼 보다 더 힘나는 <좋아요>나 <엄지척>도 만날 수 있고, 심지어 돈도 벌고. 가끔 반대하는 사람들도 만나지만, 그런 모든 것이 살아있는 것 같잖아. 뭔가 대화에 참여하는 것 같아서 좋은데. 아주 활기에 넘친다니까. 그런데 잠잠하고, 가만있으라고?


곰비 맞아. <좋아요>는 비타민이지. 근데 내가 말했잖아. 그저 거들고 싶고, 속시원하게 내지르고 싶은 마음뿐이라면, 잠시만 입 다물라고. 모두가 나서서 떠들어대느라 뭐가 맞는지조차 안 보일 만큼 혼탁할 때, 그럴 땐, 잠시 멈추는 게 필요해. 쉽게 말해, 낄끼빠빠 하라는 거지.

임비 그게 쉬울까? 봐, 입이 근질거리는 거 보다 손이 근질거리는 게 더 참기 어렵거든. 뿐만 아니라, 멈추면 오히려 혼돈속에 갇히고 말걸? 오히려 내 주장을 확실히 내세우면, 뭐가 잘못되었는지 보일 때가 더 많아. 그러니 일단 지르고, 그 다음 다시 들여다 보는 것도 필요해. 아니면 고치면 되잖아.

곰비 입이든 손이든 한 번 뱉어지고 나면, 고치는 게 더 어렵다는 건 모두가 아는 상식이야.내지르고 후회하느니, 잠잠하고 기다리면 휘저은 물이 가라앉고, 물 아래가 보이듯이, 멈추면 보이는 것이 있다니까. 그러다 내가 옳으면 내 주장을 강조하고, 상대방이 옳으면 인정해주고, 나도 옳고, 상대방도 옳다면, 우리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된다고. 어쩌면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뱉어내고 고치는 것보다 빠를지 모르니까.

임비 역사가 증명한다, 뭐 이런 말 하고 싶은 거야?

곰비 역사, 씩이나. 잠잠하라는 솔로몬의 잠언을 온라인에서 아무렇게나 떠드는 이 시대에 곱씹어 보자는 거지. 지금 시대에는 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잠잠해서 지혜로운 자나 슬기로운 자로 대접 받자는 게 아니라, 혼탁함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임비 음, 참 시대를 못 읽어. 혼탁함이 가라앉을 시간이 있는 줄 알아? 늘 들뜨고, 혼탁해. 설령 떠들썩하던 문제의 혼탁함이 가라앉았다? 그건 이슈에서 멀어졌다는 얘기고, 이미 잊힌 거야. 아무리 내가 중도를 잡고 이야기를 해도 이미 강 건너로 사라져서 들을 귀조차 없다니까. 그러느니 차라리 들끓는 참여본능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게 나아. 깨지고, 얻어맞더라도. 난 열심히 떠들어서 주변 사람들 호응도 얻고, 비판도 받으면서 갈래. 난 가만 있으면서 중간이라도 가는 거 말고, 좀 어지럽더라도 흔들리면서 갈래. 애들아, 내 말 좀 들어봐, 하고 외칠래. 그게 메아리도 없이 혼자 떠드는 것보다 나으니까.

곰비 이슈가 가라앉아서 잊힌 게 아니라니까. 수면 아래 웅크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날것의 모습으로 부웅 날아올라, 날 부끄럽게 한다니까. 뉴스에서 수도 없이 나오잖아. <그의 과거 발언>, 이러면서. 시간이 지나 그것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때는 당시에 찧고 까불었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내가 내뱉은 뼈다귀만 올라온다고. 아주 신랄하게. 그러니 뜨거운 냄비에서 물이 끓어오르며 분자들이 이리저리 요동칠 때가 아니라, 냄비의 열기가 식으며, 나대던 분자들도 차분해지는 딱 그 때, 그 타이밍에 조용히 입을 여는 것도 방법이란 거야. 가만있으라고 죽을 때까지 가만있으라는 게 아니니까. 잠시만 잠잠하라고.

임비 있지, 너 그걸 신중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기회주의자란 소릴 들어. 심지어는 끼어들어야 살 수 있는 그 감각마저 퇴화된다니까. 뜨거운 냄비 안에서 이리저리 튀어야 팝콘이 되지. 냄비 식을 때 들어간다고? 그건 그냥 콩으로 있겠단 소리야. 그러니 그냥 저지르는 것도 방법이야. 특히 요즘 세상에는.

곰비 내가 진짜 무서워하는 건 잊히지 않는 인터넷의 기억이고 망령이야.

임비 그거야 말로 어쩌다 재수없을 때 일이고. 오히려 한 바탕 떠들 때, 내버려두면 그렇다고 믿은 상태로 영원히 박재된다니까. 잠잠하고, 가만있는 게 능사가 아니라니까. 말하자면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거나, 잠잠하고 기다리라는 말은 솔로몬 시대 이야기야. 지금은 같이 떠들어 대야 돼. 내 이야기가 묻히든 드러나든 계속 말을 해야 한다고. 점잖다느니, 참을성 있다느니, 신중하다느니, 이 따위가 진리이던 시절은 갔어.

곰비 에휴, 너하고는 의견 조율이 안돼서 많이 아쉽다.

임비 지금이 그런 시대야. 꼰대짓도 시절 봐가면서 하자.

곰비 그렇게 내 말이 꼰대소리였다면 나도 이쯤에서 입을 닫을게. 네 말 듣다보니 가만있는 게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걸 알겠어. 혼탁함이 쉽게 가라앉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지혜롭지 않은, 아니, 지혜로워도 인내심은 정말 힘들겠구나 싶어. 중간 가기도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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