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비 임비의 소소한 대화
임비 골골 팔십이라. 요즘 현대인들이 제일 겁내는 말 아닌가?
곰비 어떤 의미에서?
임비 유병백세란 말로 가져온 거 아니야?
곰비 원래 이 말의 뜻대로 가져 온 거야. 병 때문에 더 관리하고, 그래서 장수한다는 말이잖아.
임비 그게 그 말이지. 아프니까 더 조심해서 오래 산다는 거잖아. 골골거리면서 오래 사는 게 뭐 대단한 일이겠어. 옛날 단명하던 시대에는 그렇게라도 오래 살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재앙이잖아.
곰비 네 말 듣고보니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 하지만 난 그런 의미로 가져온 게 아니야.
골골대는 건 곧 건강상의 결핍이자 약점이잖아. 자기 건강이 형편없는 거 아니까 알아서 조심하고, 관리해서 팔십까지 산다는 거고. 그런데 그 결핍과 약점을 더 확대해 보자는 거지.
내가 우리 부모님하고 한 달에 한 번 거의 의무적으로 만나는 거 알지. 엊그제가 그날이었는데,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다가 문득 헬리콥터 맘이 생각났거든. 자녀들 곁을 맴돌면서 위험이나 실패할 일을 사전에 제거하는 부모들 말이야.
임비 골골 팔십과 헬리콥터 맘이라.
곰비 부모님이랑 그렇게 만나다보니 어려서 내가 불편했거나, 아쉬웠거나 뭐 기타등등, 옛날 일들이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르기도 하거든. 그때 왜 그랬어요, 이런 말.
임비 흐흐. 너네 부모님이 뜨끔하겠다. 누군가의 소설에서 어려서 죽은 아이가 다시 환생해서 그 때 왜 나 죽였어요, 하는 것 같잖아.
곰비 야, 그런 말을 할 정도면 한 달에 한 번 가기나 하겠냐?
아무튼 엊그제는 내가 자랄 때 우리가 많이 가난했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엉뚱하게 우리 부모님이 가진 자식 교육 철학 이야기가 튀어나오더라고.
임비 부모의 자식교육 철학? 와, 난 들어본 적도 없는데. 우리 부모님도 그런 게 있었을텐데. 물어본 적도 없고, 들은 기억도 없네. 생각해 보니 참 이상하긴 하다.
곰비 우리 부모님의 교육 철학 중 하나가 ‘사랑은 넘치게 그 외 지원은 부족한 듯하게’ 였대. 난 늘 용돈이 부족했는데, 그게 진짜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 철학 때문이었다니, 좀 억울한 것도 같고.
아직도 창피한 기억으로 있는 게, 친구 생일 파티에 갈 때 연필 한 자루 들고 간 적도 있단 말이야. 그때 정말 뼈저리게 부자가 되고 싶었거든.
임비 야, 그거 내 생일이야. 나 그때 너한테 무진장 섭섭했었어.
곰비 그래? 네 생일에도? 내가 기억하기론 병수 생일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친구 생일이 있으면 용돈을 정말 아껴 썼는데, 네 생일에도 그랬구나. 대신에 내가 정말 신나게 놀아주지 않았냐. 친구들이랑 할 만한 게임도 준비하고, 아무튼 선물 대신 할 수 있는 거 열심히 했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 나름대로의 처세술이었단 생각이 들어.
어쨌든 용돈이 늘 부족해서 아쉬웠거든. 근데 크고 나서 보니까 그게 나한테는 정말 좋은 에너지였단 말이지. 어른이 돼서 독립하는데 정말 필요한 연료였어.
임비 와, 네 부모님이 내 섭섭함을 연료로 널 키웠단 말이야?
곰비 하하. 넌 일년에 한 번 섭섭함이었지. 난 늘 부족했어.
근데 부족한 게 용돈만이 아니었으니 문제였지.
난 학교에서 일을 저지르거나 친구들과 싸운 일이 있어도 지원사격을 해주지 않았거든. 한 번은 친구 엄마한테 부당하게 혼났는데도 내버려두셨어. 그때 난 내가 주워온 자식인 줄 알았다니까.
임비 야, 친구 엄마가 나섰다면 같이 나섰어야지.
곰비 그때 일도 또렷이 기억 나. “그래? 그 아이 엄마가 그랬구나. 넌 어떻게 했어?” 이러면서 그냥 냅뒀단 말이야.
심지어 “애들 싸움에 엄마들이 나서는 건 자식을 믿지 못하는 거지. 넌 내가 널 믿지 않으면 좋겠니?” 했다니까.
대신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며 별식을 해주시긴 했지. 또 놀이 공원에도 갔던 거 같아. 참.
지금 생각해 보니, 물질적 결핍과 같은 맥락이었던 거 같아. 사사건건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했던 거 같거든.
임비 하긴 그런 게 필요하긴 하겠다. 한참 전 뉴스에서 본 건데, 요즘은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부모가 시간표에 간섭하는 것도 모자라, 신입 사원이 되면 과장한테 전화까지 한다더라고. 모자람 없고, 풍족하고, 그렇게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 많잖아. 그러니 학교는 물론 직장까지 부모들이 난입하고, 1;1 로 자기 자식을 다 케어해줘야 한다고 요구하는 부모들도 늘어나고.
곰비 이번에도 이러시는 거야. “소설에서 갈등이나 위기가 없으면 소설이 안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다투고, 경쟁하고, 뭔가 모자라서 애태우는 갈등이 없이 자라면 웃자라는 풀떼기가 되는 거야. 절대 단단한 나무로 자랄 수 없어.“ 이러시는데 꽤 그럴 듯 하더라니까.
결국 모자람이나 결핍은 사실 자식의 성장판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 결핍에 자극을 받고 단단해질 공간인 거지. 말하자면 자식이 클 공간, 자식의 시간, 자식의 욕망이 자랄 공간인데 그걸 부모가 다 차지해 버리는 줄도 모르고, 그 모자람을 채워줬다고 좋아하는 거잖아. 진짜 채워줘야 할 사랑은 텅텅 비우면서 에너지가 될 결핍은 돈으로 채우거나 남의 손으로 메꾸는 거 진짜 많잖아. 채워야 할 것과 비워야 할 것의 방향을 어른들이 자기 편한 대로 하면서 마치 자식 위한 것처럼 ‘다 너 잘 돼라고 하는 거야’ 이러는 것도 웃기고.
속담처럼 골골대는 결핍이 스스로를 돌보는 에너지가 되어서 팔십까지 살 수 있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더라.
임비 그래? 지금 너의 골골은 뭔데?
곰비 지금도 많지. 잘 돌보면서 가고 있어. 지금은 그 결핍이 내 겸손의 지문이 되고, 열정의 연료가 되고 있어.
임비 그래? 여전히 결핍의 구덩이에서 에너지가 꿈틀댄다는 거야?
흠, 실은 나도 많아. 그래서 불만이고, 허기지고, 짜증나. 그런데 이 골골을 연료로 사용하라는 거잖아. 꼰대 소리 같기도 하고, 그럴 듯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