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될성부른 놈 떡잎부터 알아본다-天才 말고 千才로

곰비 임비의 소소한 대화

by 포쇄별감


임비 비 오는데 뭐 이런 슬픈 말을 가져왔어.

곰비 ‘될성부른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 이 말이 슬퍼? 듣다듣다 처음 듣는다. 참 별나다.

임비 장차 크게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조짐이 보인다잖아. 근데 이 말이 안 슬퍼?

곰비 안 슬퍼. 그런 의미로 가져온 말도 아니고.

임비 그래? 난 이 말이 슬퍼. 그래서 안 좋아하는 말이야. 어려서는 아, 나도 어려서부터 뭔가 착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는 작은 충고나 안내서 같은 말이었거든. 그래서 잘 된 놈이 되려고 반듯하고 열심히 살려고 했었어. 그래야 그 떡잎이 멋있어지는 줄 알고.

곰비 그래. 크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착하고, 성실하게 자랐잖아. 뭐가 문제야?

임비 그러게. 근데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만큼이나 슬프다는 걸 알았어.

곰비 갈수록 태산이네. 콩 심은데 콩 나는 일이 왜 슬프냐고. 너무 정직한 진리인데. 이러다가 밥 먹었으니 똥 싸야겠다는 말도 슬퍼지겠다. 순리대로 가는 일에 왜 딴지를 걸고 야단이지?

임비 콩 심은데 콩난다고? 그럼 이렇게 말해볼까? 똑똑한 유전자는 똑똑한 유전자를 전달할 확률이 높고, 멍청한 유전자는 멍청한 유전자를 전달할 확률이 높지. 또 부자 부모를 둔 놈이 부자가 될 확률은 가난한 부모를 둔 놈이 부자가 될 확률보다 높아. 그치?

다시,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떡잎은 스스로 결정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거야. 이미 좋은 유전자를 타고난 씨앗으로부터 움이 텄고, 때마침 좋은 토양에 떨어졌으니 떡잎부터 다른 거잖아. 심지어 콩을 심었으니 콩 떡잎이고, 팥을 심었으니 팥 떡잎이야.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실력으로 천재가 되는 게 아니고, 천재는 타고 나야 천재잖아. 천재의 천은 하늘 천이라고. 떡잎부터 다르다는 거는 잘 타고 났다는 거야.

곰비 널 보니까, 어른 되면 왜 웃음이 줄어드는지 알 것 같다. 난 다르게 생각해. 출발선이 다르니까 공평하다는 말을 달리 이해해야 하는 건 맞아. 하지만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은 공평하지 않아. 여기서 공평과 공정이 어떻게 다른지는 상식이니까 말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무리 생활하는 영장류들도 서열이 높은 부모의 새끼가 권좌에 오를 확률이 높아. 그런 거 보면 원래 생태계란 게 그래. 하지만 인간이니까 공정함이란 개념을 생각해내서 다행이고.

임비 무슨 침팬지까지 들먹여.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은 왕조 시대가 아니라고.

곰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기계적으로 공평하고, 평등한 게 없다고 말하는 거야. 넌 지금 천재 유전자에 능력있는 부모를 두지 못한 사람들은 슬퍼해야 한다는 거잖아.

임비 계층이 고착화되고,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가 아닌 건 맞잖아.

곰비 맞아. 하지만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이상한 거였지. 그 신화에 목 매고 다들 용이 되려던 시대가 더 암울했을 수도 있어.

임비 뭐야. 그럼 넌 그저그런 부모와 그저그런 환경에서 그저 그렇게 사는 게 맞다는 거야? 우량한 떡잎으로 태어난 것만 우량한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곰비 이미 넌 출발부터 잘못된 잣대를 대고 있는 게 아닌가? 이쯤에서 고백할 말이 있는데, 사실 나도 이 말이 달갑지 않았었거든.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그러고 나니 이 말이 꽤 괜찮은 의미를 갖더라고. 실은 그래서 이 말을 가져온 거기도 해.

임비 거 봐, 너도 이 말이 가진 폭력성을 이해하고 있잖아. 그 놈의 떡잎은 노력한 게 뭐냐고. 그냥 운 좋게 태어난 건데. 금수저 은수저가 왜 나왔겠어.

곰비 일정부분 인정. 하지만 옛날이야 성공이라는 잣대가 너무 한정되어 있던 시대였고, 그 잣대가 대부분 타인의 시선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만 인정되었으니까, 주로 시험을 잘 친 사람, 후광을 이용해 높은 자리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삶이라고 인정되었으니까. 넌 아직도 그런 잣대를 사용해서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에 슬픔을 느끼는 거 아냐? 이 구석기 시대 인간아.

임비 흠, 그렇다고? 설마 나 위로한답시고, 여기에 되도 않는 교훈을 처발라놓지는 마라.

곰비 교훈이 어때서. 봐,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어. 근데 이 놈이 공부를 더럽게 못하는 거야. 아무리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해봐도 싹이 없어.

임비 설마. 야, 그럼 해야 할 것 딱 하나야.

곰비 뭐?

임비 유전자 검사. 내 자식 아닐 확률이 높다니까.

곰비 헛소리 집어치우고. 이 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될성부른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얘 삶이 파장났으니, 삶을 접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

임비 유전자 검사부터 해볼거라니까. 내 자식이라면 그럴 수 없어요. 아침 드라마가 우리 진짜 인생일 때가 많아.

곰비 그건 너한테 갖다 붙이고. 자, 봐라. 시대가 바뀌었다는 건 이런 거야.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가 아니고, ‘떡잎부터 살펴서 될성부른 나무로 키우자’가 되어야 한다고.

임비 말장난 하지 마라. 네 주장대로하면 콩 싹을 잘 키워서 팥으로 만들겠다는 거잖아.

곰비 아이고, 그런 말장난 아니야. 떡잎이 어떤 건지 알아보고, 그에 맞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모두가 공부, 일류대 가는 거에 몰빵하지 않게. 다행히 예전처럼 소수의 엘리트 직업만이 존경받는 시대 아니고, 직업도 다양해지고, 직업에 귀천을 많이 따지지도 않고, 꼭 <사>자 들어가는 직업만 존경받는 시대 아니니까. 그에 따른 개인적 만족감은 다 다르잖아. 내 떡잎이 어떤 성향인지, 자식 떡잎이 어떤 성향인지 들여다보고, 그 방향으로 길을 안내하는 게 팔요하다니까. 내가 판검사 못 됐으니까 넌 되라, 이 따위 무지 몽매한 바람을 자식한데 강요하지 않게. 오케이?

임비 칫, 이번엔 고지식도 모자라서 고루한 거야? 하여튼 넌 어째 도덕 교과서 같은 생각으로 꽉 차있냐? 그것도 재주다. 그래도 어쨌거나 막 슬프거나 짜증 나지는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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