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니가 가라 하와이-vs 와신상담

곰비 임비의 소소한 대화

by 포쇄별감

임비 뭐야. 옛날 고리짝 영화에서 나온 대사 아닌가? 장동건이 칼 맞으면서 한 말.

곰비 맞아. 갑자기 생각나서 가져온 거야. 대단한 뭐가 있었던 건 아니고.

임비 언제는 대단한 거 가져온 듯이 말하네. 그래 이 말은 왜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누가 나한테 비행기 표 끊어주면서 하와이 좀 다녀와, 하면 좋겠다.

곰비 너 이 영화 맥락을 모르지? 이 말은 친구이면서 상대편 깡패 두목이 ‘너 우리한테 졌어. 그러니 내가 알량한 우정이랍시고 베풀 때 잠깐 하와이로 도망가 있어. 그렇잖으면 우리 똘마니들한테 칼 맞아.’ 이러면서 하와이 가라고 한 거잖아.그러니 ‘니가 가라 하와이’는 알량한 호의를 받느니 깔끔하게 죽겠다는 거고.

임비 하, 참. 영화를 안 봤어도 그 내용은 알아, 임마. 장동건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당연하지. 깡패 세계에서 그럼 ‘오, 고마워.’하면서 냉큼 하와이행 비행기 표를 받겠어. 그것은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에게 멋진 배 하나를 내주면서 홀홀단신 갈리아로 돌아가라고 하는 거랑 같은데.

곰비 썩 어울리는 비교는 아닌 것 같은데.

임비 칫, 아님 말고. 근데 솔직히 ‘니가 가라 하와이’ 하면서 장렬하게 칼 맞는 장동건 멋있잖아.

곰비 맞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게 그거야. ‘니가 가라 하와이’를 외치면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멋진가, 쓸개를 씹으며 복귀를 노리는 게 나은가, 하는 문제야. 솔직히 장렬하게 전사하는 건 단발성이고, 간결하고 멋지잖아. 그런데 쓸개를 씹으며 견딘들 멋지게 귀환한다는 보장은 없고, 비루하고, 고통의 늪을 아무리 헤매도 절대 귀환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나를 걸 것인가.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게 잘한 일일까 문득 생각했어.

임비 음, 너라면 뭘 택할 것 같은데?

곰비 선택하기 어려우니까 가져왔지. 넌 뭘 선택할래?

임비 난 당연히 안분지족(安分知足)이지. 와신상담(臥薪嘗膽)도 싫고, 친구로서 마지막 우정으로 목숨을 구해줬다면 돈도 더 달라고 해서 하와이로 가서 딴 삶을 살지.

당장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 거 같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잖아. 왜 좁은 현실에 코 박고 징징대며 사냐고.


곰비 또 논점을 흐리지.

임비 논점을 흐리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는 장동건이 ‘니가 가라 하와이’를 선택하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라고.

세상의 모든 선택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다자택일 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언제든 선택권은 세상이 내놓는 질문지 바깥에도 많으니까.

곰비 알았어. 이번 일은 내가 너의 딴지에 말린 것으로 할게.

임비 말린 게 아니라, 만약 영화에서 와신상담을 택했다면, 그건 2탄을 예고하는 거고. 현실은 안분지족이 제일 낫다니까.

곰비 끝내려고 했더니만…. 그럼 따랐던 많은 부하들이 죽었는데도 안분지족이 옳다는 거야?

임비 에잇, 그럼 문제가 복잡해지네. 불행하지만 확실한 앤딩이냐, 복수를 기대하는 불완전한 리셋이냐, 로 접근할까? 아, 모르겠다.

곰비 그래서. ‘니가 가라 하와이’란 말이 참 복잡미묘하게 되씹게 되더라고. 그러다 와신상담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분노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 무엇보다 그 고통을 감내하고 다시 설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말하자면 와신상담에서 베고 누운 섶나무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고, 쓸개는 지치지 않는 마음이란 생각이 들었어.

임비 그건 그래. 미련한 복수심으로만 견디는 거라면, 자기 살을 갉아먹으면서 죽음을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할테니까.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진짜 비참함의 시작은 거기부터지. 물론 장렬한 죽음이든, 안분지족이든 혹은 와신상담이든 자신의 선택에 대해 그만한 이유가 있고, 책임이 있다면 뭐가 됐든 최선은 다해야지.

곰비 오, 임비. 하이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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