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자 그럼 내내 어여쁘소서

곰비 임비의 소소한 대화

by 포쇄별감


임비 뭐야, 이런 고어체는.

곰비 너의 무식을 탓하지 않을게. 실은 나도 광고판을 보고 알았으니까. 이상의 시 ‘이런 시’의 한 구절이야.

임비 광고판에 이런 시 구절이 있다고? 무슨 기업 광고기에 그렇게 고고해?

곰비 기업광고는 아니야. 서부 간선도로 지나다 보면 나오는 거야. 뒷면에도 멋진 구절이 있는데 생각나지 않네. 그 길을 가본지가 오래되었거든. 그때도 무척 낡았었는데, 지금도 있으려나 모르겠다. 사실 서부 간선도로가 상습정체구역이잖아. 근데 이 광고를 보면, 잠시 행복해지거든. 아주 커다란 광고판인데, 기업광고가 아니야. 기업 광고를 실었다면 돈을 벌었을텐데, 이런 시를 걸어놨단 말이지. 이걸 치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어쩐지 광고판이 더 낡아가면서 마음도 더 따뜻해질 거 같단 말이지.

임비 너 고지식하니까 그 시 끝까지 읊어봐, 하고 싶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네.

곰비 네가 읊어보라고 해도 안 할 거였어. 그냥 한 번 찾아 봐. <이 상>의 ‘이런 시’야. 이 구절은, 놓음으로써 평안해지고, 부드러운데 단호해. 상업 광고 대신 시를 걸어놓은 거랑 찰떡 같이 어우러지는데다, 정말 마음이 예뻐지거든.

한 발짝 물러 서기, 놓아주기, 보내주기. 그리고 여백.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게 너무 멋져보여서 들고 온 거야. 하루쯤은 그래도 되잖아.

임비 그런데 오늘 가져온 구절은 평소와 다른 구절인 거 같은데. 어째 느낌이 쌔하다.

곰비 맞아. 오늘 우리 작별하는 날이야.

임비 그럴 것 같았어. 왜냐고 묻지 않을게. 우린 언제든 만날테니까.

곰비임비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몇 분 안 되는 구독자 분들, ‘좋아요’를 눌러주셨던 분들, 조용히 읽고만 가신 분들, 감사합니다. 꾸-벅.


자, 그럼 내내 어여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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