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화는 이 운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장비이다. 달리는 거리가 멀수록, 시간이 더 길어질수록 그 영향은 더 커진다.
내가 지금 신고 있는 마라톤화는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SL2> 모델이다. 풀코스를 달리겠다는 결심과 계획과 함께 구입해서 지금까지 잘 신고, 달리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운동화만 신었기 때문에 바닥이 닳기도 했고 쿠션의 탄력도 줄어들었다. 풀코스를 달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다른 운동화를 하나 더..'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얻게 되는 마라톤 정보 중에 운동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데, 정리해 보면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레이싱을 위한 카본화, 안정적 달리기를 위한 쿠션화, 일반적인 러닝화/안정화가 그것이다.
운동화 창 중간에 카본플레이트를 넣은 '카본화'는 마라톤이 속도전이 되면서 유명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운동화이다.
'쿠션화'는 운동화의 쿠션층을 더욱 기능적으로 만들어서 달리기면서 얻게 되는 발목, 무릎 등의 부상을 줄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우리가 많이 이야기하는 '러닝화/안정화'는 일정한 거리 이내를, 무리해서 달리지 않는다면 훌륭한 달리기 도구이다. 아울러, 디자인도 다양하고 다른 기능도 장착되어 일상에서도 무난하게 착용할 수 있다.
전문적으로 달리며 기능과 퍼포먼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레이서들은 보다 구체적인 차별이 필요하겠지만, 나 같은 초보자는 이들 간의 차이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중에서하나를 골라서 사려고 하니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운동화를 사겠다'는 일념으로 백화점을 찾았다.
<스포츠>라고 적힌 백화점 1층, 총 3개의 매장에서 마라톤화를 발견했다(다른 매장도 마라톤화가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첫 번째는 <뉴발란스> 매장이다.
마라톤화 코너에서 "카본화 있어요?"라고 했으나 이 매장에는 카본화가 없다는 답으로 돌아왔다.
"어.. 처음부터.. 이러면 곤란한데.."라면서 그래도 찾아본 모델이 <프래쉬폼 엑스 FRESHFORM x 860 v14>이다.
일반화의 범주로 볼 수 있는 이 운동화는 착용감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풀코스를 달릴 것을 염두하고 저울질 중인 나의 눈높이와는 맞지 않았다.
두 번째로 방문한 매장은 <푸마>였다.
푸마의 강렬한 울긋불긋한 색상과 함께 내 눈을 사로잡은 운동화가 나타났다. 그 신발은 바로 <디비에이트 나이트로 3/ PUMA DEVIATE NITRO 3> 모델이었다.
푸마의 대표적인 카본 운동화 모델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러닝화이다. 이런 인기를 입증하듯이 현재 남아있는 모델이 전시된 이 운동화 밖에 없다고 했다. 다행히 이 신발이 내 발과 맞아서 신어볼 수 있었다.
밟을수록 더 단단하게 튀어 오르는 카본의 탄성과 발 전체를 단단히 감싸주는 운동화의 기운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강렬한 주황색 그러데이션의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나의 모습이 강력하게 상상되었다. 그렇게 푸마의 매장을 '찜'하고 다음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매장은 <나이키>였다.
오랫동안 나이키 매장을 다녀봤지만, 갈 때마다 '이 공간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라고 느끼게 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운동화로 채워진 벽을 보면서 혼자 황홀경에 빠지기도 했다.
마라톤화를 찾는다는 나의 이야기에 직원이 알려준 운동화는 바로 <나이키 페가수스 플러스 NIKE PEGASUS PLUS>였다.
나이키 특유의 발을 감싸 쥐는 갑피의 그립감과 쿠션화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게 발바닥을 받치는 탄성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나이키!'라는 나의 숨어있던 본심을 숨기기 어려웠다.
이 작품에 마음을 뺏기고 잠시 눈을 돌리면서 앙증맞은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이건 어떤 운동화예요?"
"아, 이 운동화도 마라톤환데.. 음.. 준비가 안된 분들이 신으면 좀 당황하시더라고요.."
"??(이게 무슨 말이지?)"
이 정도면 신어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사이즈를 찾아서 이 운동화를 신어 보고 나서야, 그 직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운동화는 바로 <줌 엑스 스트릭플라이 ZOOMX STREAKFLY>이었다.
위에 보았던 <페가수스 플러스>의, 중량이 245g이었던 반면, 이 운동화는 185g이었다. 신발을 신는 순간 운동화가 나를 밀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이 운동화와 함께 40km 이상의 장거리를 뛰기에는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연습해서 빨리 달리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새로운 마라톤 동반자를 찾기 위한 나의 짧은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녀석을 선택했을까?
모두 탐나고 멋진 아이템들이었다. 뉴발란스의 일반화는 가볍게 달리거나 신고 다니기에 좋을 것이다. 푸마의 카본화는 언젠가는 꼭 신고 싶은 로망이 되었다. 직접 신었을 때의 '황홀'을 잊기 어렵다. 나이키 매장에서 느꼈던 줌x의 '당황스러움'도 잊기 어려웠다. 이런 선택의 고통에서 나는 어렵게 선택했다.
그건 바로...
<나이키 페가수스 플러스>였다.
신어보았을 때에 느꼈던 착용감과 선명한 주황색의 유혹 그리고, 오랜만에 이루어진 나이키와의 조우가 나의 선택을 결심하게 만들었다(실제 신발이 좋아서 이기도..)
현재 신고 있던 <아디제로>를 신어 보고 비교해 보니, 쿠션감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