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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선생 Nov 17. 2024

달리는 순간이 달리는 이유_두 번째 이야기

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기 44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이 큰 덩치와 얽힌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더 있다.


내가 4학년이던 때, 우리 학교에 야구부가 생겼다. 

매일 짬뽕(손으로 고무공을 때리며 하는 야구 형태의 놀이)에 푹 빠진 나와 친구들에게 야구부는 상당한 흥밋거리였다. 그 당시 학년 전체에서 키와 덩치가 최상급이었던 나는 당연히 선생님의 눈에 쏙 들었다. 그렇게 선발된 나 역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결사적으로 반대하셨다.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운동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했다. 엄마가 교무실을 2~3차례 방문하신 후에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야, 너 공부 잘해? 이그... 넌 공부나 해~"


그때 야구부를 했던 친구들 대부분은 중학교 이후에는 모두 야구를 그만두었고, 나보다 학교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도 많았다. 그리고 내가 5학년이던 1982년에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이래저래 야구가 주목을 받던 시대였다. 아쉬운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를 놓쳤다. 


또 6학년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6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다. 나의 키와 덩치는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적잖은 관심 사였나 보다. 같은 학년 친구들 대부분이 잘 대해주었지만, 시비를 걸고 노골적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녀석들도 적지 않았다. 지금에야 다 어린 시절 '친구'가 되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아이들 몇 명과 함께 나를 불렀다. 외부에 무슨 체육대회가 있어서 학교 대표 달리기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몇 명이 시합을 해서 그중에서 선발을 하시겠다고 한다. 덩치가 큰 것과 달리기 실력이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저는 달리기 못하는데요.."

"그냥 뛰어! 짜슥아.."


그날 저녁에 이 사실을 엄마한테 이야기했고, 엄마는 또다시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 결과는 2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공부가 무엇보다 우선인 우리 엄마..


"사내 짜슥이 뭐 그런 일로 엄마를 오시게 하노? 그냥 달리기만 해!"


난 그냥 달리기만 했다. 대회도 결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달려보다로 선택받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덩치가 크다는 것은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이다. 순발력이 떨어지고 움직임이 굼뜬다는 말이다. 축구 등 다른 놀이에서 친구들에게 '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했다. 가끔 서러움도 겪었지만.. 하지만, 단거리 달리기처럼 가속도가 필요한 경주에서는 내 달리기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가장 많이 달렸던 100미터(정확하진 않지만) 달리기에서 40~50m 이후에 쭉 치고 나가는 그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하지만, 그것이 달리기 실력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해가 지날수록 이런저런 일도 생겼지만 나는 달리는 것이 여전히 좋았다. 귓가를 가르는 바람소리도 좋았고, 숨이 가빠오는 쫄림도 짜릿했다. 혹시나 함께 달린 친구보다 빨리 들어왔을 때의 쾌감도 나쁘지 않았다. 


비대해지는 몸뚱이와 관계없이 나는 그렇게 달리기가 좋았던 것이다. 

이번 주는 LSD를.. 20km 이상을 뛰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국민학교 #달리기 #마라톤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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