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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선생 Dec 25. 2024

라면 먹고 달렸어요..

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기 50

1986년에 나는 중3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비평준화 지역에서 중3 생활은 고3 못지않다. 한 해 전,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연합고사 커트라인은 200점 만점에 약  170점이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평균 85점을 넘어야 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살벌한 시절이었지만, 10대의 낭만적인 기억도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86 아시안게임'이었다.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예비로 열리는 국제대회이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당시 국민들에게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선사했던 대회였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93개, 은메달 55개, 동메달 76개로 전체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많은 스포츠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수영 2관왕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중국 '만리장성'을 넘은 탁구 금메달 유남규, 양궁 4관왕 양창훈 그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육상의 임춘애 선수가 아니었을까?

<제일 앞에 들어오는 선수가 임춘애 @동아일보>


그녀는 지금도 육상의 불모지인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 육상 3관왕을 이룬 인물이다. 800m, 1500m, 3000m에서 금메달을 딴 그녀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탈락했을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전국체전에서 세운 3000m 한국 신기록을 인정받아 대표팀 막차를 타는 행운을 얻었다.


금메달을 딴 과정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처음 출전한 종목 여자 800m에서 그녀는 인도의 쿠리신칼 아브라함에 이어 2등으로 골인했다. 은메달도 좋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들어온 아브라함 선수가 코스이탈로 실격을 당하며 그 뒤에 들어온 임춘애에게 금메달이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


뒤 이어 치러진 1500m와 3000m는 중국선수가 월등한 기량을 가진 종목이었다. 하지만, 정신력에서 앞서고 홈구장의 이점을 십분 발휘한 임춘애가 다시없을 역주를 하며 2개의 금메달을 엮어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차마 기대하기 어려웠던 쾌거를 이룬 것이다.


"라면 먹고 운동했어요, 우유 먹고 운동하는 친구가 부러웠어요."라는 그녀의 인터뷰는 세간에 이슈가 되었다(사실은 라면'도' 먹었다는 것이 맞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 선수촌에서 조차 인정받지 못해 묵묵히 달렸던 그녀에게 딱 맞는 스토리텔링이 되었다. 유독 빼빼 말랐던 그녀의 모습과 힘든 성장과정이 오버랩되면서 전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슈퍼스타가 되었던 것이다.

<3관왕..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용인시민신문>

그 이후 우리나라 육상은 마라톤에서는 황영조, 이봉주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지만, 트랙에서는 지금까지도 대표하는 스타를 찾기 힘들다(이제 마라톤도 대표 선수가 없다). 뭐가 문제일까?


돈이 되지 않는다, 그걸로 먹고살기 어렵다, 그 정도 잘 달리면 다른 종목을 하지.. 등 많은 핑계와 지적이 있다. 하지만, 대책은 없는 것 같다. 수영과 함께 육상은 대형 스포츠 게임에 가장 많은 메달이 걸린 종목이다. 그만큼 그 나라의 기초력(力)을 보여주는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육상에서 우리는 자꾸 뒤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박태환 이후 수영에서 황금세대가 등장해서 세계 무대를 휩쓰는 모습을 보면 '왜 육상은 안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스타디움 한 복판에서 금메달 3개(또는 그 이상)를 걸고 플래시 세례를 받는 우리나라 선수를 볼 수 있겠지? 올해 크리스마스의 소원 중에 하나로 빌어본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메리 크리스마스!!

<풋 프린트로 크리스마스트리를..ㅎ>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86아시안게임 #임춘애 #육상3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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