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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선생 Dec 29. 2024

남승룡, 서윤복 그리고, 손. 기. 정

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기 51

우리나라의 달리기는 물론 스포츠 역사에서 이들의 이름을 빼놓고는 시작할 수도, 끝맺을 수도 없다. 어둡고 힘든 일제치하의 역사 속에서 횃불을 들고 달렸던 선각자(先覺者가 아닌 先脚者)인 남승룡, 서윤복 그리고 손기정 선수가 바로 그들이다.


남승룡 선수는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11회 하계 올림픽'의 마라톤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손기정이라는 큰 나무가 같은 대회에서 금메달을 얻으면서 남승룡 선수의 업적과 기록은 상대적으로 가려졌을 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기록이고 업적이다. 


그는 올림픽에 앞서 치러진 선발전에서 2시간 36분 05초를 기록하며 1등으로 손기정 선수와 함께 올림픽에 출전했다. 일본 정부와 체육계의 악착같은 방해를 이겨내고 일본 선수가 아닌 일본의(?) 대표를 쟁취해 냈던 것이다. 자국 선수를 대표로 보내기 위해 두 선수를 탈락시키려는 일본의 음해가 집요했지만 이들은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기록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았던 우수한 기록을 가졌던 두 사람에게는 자못 우승에 대한 기대까지도 이어졌는데.. 결국, 남승룡 선수는 그 올림픽에서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했고, 손기정 선수는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남을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맨 앞이 남승룡,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린 선수가 손기정, 고개 숙인 두 사람의 모습이.. @경향신문>


남승룡 선수는 광복 후인 1947년 보스턴 국제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35세를 넘긴 그가 그 대회를 출전한 이유는 메달이나 좋은 성적이 아니었다. 오직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국제무대를 달리겠다는 목적 단 하나였다(손기정은 감독으로, 남승룡은 코치 겸 선수로). 그렇게 그는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보스턴 시내를 제자와 함께 가로질러 달렸다.


그렇게 함께 달린 제자가 바로 서윤복 선수이다.

1947년 4월 19일, 해방 이후에 처음 출전한 국제 마라톤 대회인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그는 2시간 25분 39초로 우승했다. 우승은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에 'KOREA'라는 이름을 달고 거둔 첫 번째 국제대회 우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1947 보스턴'에 서윤복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감동 깊게 담겨있다. 영화에도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도 태극기를 달고 달리도록 하기 위해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가 아주 힘든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돈(재정보증금), 비자, 통역 등 힘없고 약한 나라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여정이었던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우승한 서윤복 선수에게 족패천하(足覇天下, 발로 천하를 재패하다)라는 붓글씨를 하사하여 치하했다고 한다.


반면, 서윤복 선수의 이 우승으로 국제대회에서 'KOREA'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950년 제54회 대회에서는 함기용, 송기윤, 최윤칠 선수가 1~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1993년에는 김재룡 선수가 2위를, 1994년에는 황영조 선수(바로 그 황영조!)가 4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001년 105회 대회에서는  '봉달이' 이봉주 선수가 다시금 우승을 거두었다. 이래저래 우리나라와는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대회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독립 직후부터 마라톤이라는 종목에서 꾸준히 탁월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이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손기정 선수이자 감독님의 육상과 마라톤에 평생을 바친 공로가 가장 크지 않을까?


손기정 선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그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며 거둔 2시간 26분 42초의 기록은 올림픽 신기록이자 비공인 세계 신기록이었다. 일장기를 달고 포디움에 선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부상으로 받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한 신문사에서는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기도 했다. 동메달을 받은 남승룡 선수는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던 손기정 선수의 월계수가 부러웠다고 했다)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 이 사건으로 신문사는 정간당하고 관계자는 옥고를 치렀다. @나무위키>


손기정 선수는 평안북도 의주 출신이고 어려서부터 돈이 안 든다는 이유로 다른 운동이 아닌 달리기를 했다고 한다. 언제든지 어디든지 달렸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이고 들이고 달리며 혼자 훈련했다고 한다. 배가 고파 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도 하기 어렵다. 


1933년에서 1936년까지 총 13개의 마라톤 대회를 나갔는데 그중에 10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1935년 11월 3일에 개최된 도쿄 국제마라톤 대회에서는 2시간 26분 42초의 비공인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며 일찌감치 차기 올림픽 금메달을 찜해놓기도 했었다. 


지금도 올림픽의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는 개막식 행사 중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주최 측에서는 손기정 선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보가 일본 언론에 흘러들어 가서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올림픽 개막을 목전에 둔 마당에 중요한 마지막 성화 봉송주자를 바꾸기 어려웠던 대회본부에서는 한 가지 묘수를 꾀어냈다. 


잠실 스타디움에서 성화를 받는 마지막 주자는 손기정 선수가 그대로 하고, 마지막에 점화는 임춘애(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선수로 성화를 넘기는 것이었다. 80세를 바라보는 손기정 선수가 춤을 추듯이 스타디움을 뛰어다니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말 겅중겅중 뛰어다니셨다. @CLIEN>

영화 <1947 보스턴>에서 보면 '우리나라 3대 영웅'으로 이순신, 안중근 그리고 손기정을 손꼽는다. 그 정도로 손기정 선수는 우리나라 근대사에 엄청난 업적을 이룬 인물이다. 그만큼 정치계와 사회 전반에서 유혹의 손길이 많았지만 그는 오로지 육상인 그리고 체육인으로의 삶을 고집하며 지냈다. 강직하고 숭고한 그의 일생에 존경을 보낸다. 



2024년 춘천마라톤 대회 국내 우승자의 기록은 2시간 20분 36초였다. 동아서울마라톤은 2시간 14분 20초, JTBC국제마라톤은 2시간 13분 6초였다. 서윤복 선수가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거둔 성적인 2시간 25분 39초다. 


지난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선수들의 체력과 달리기 기술은 지속적으로 진화했고, 운동화를 비롯한 장비와 훈련 방식도 체계화되었다. 황영조, 이봉주로 이어지던 전성기도 있었지만 얇은 선수층으로 인해 그 기간이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에 주린 배를 쥐어가며 달리던 모습이 이제 과거지사가 돼버린 듯하다. 마라톤도 이제는 고도로 체계화된 운동이 되었다. 악과 깡으로 다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승룡, 서윤복 그리고 손기정 선수들의 나라 잃은 설움, KOREA를 날려보겠다는 신념과 같은 정신적인 승리가 없다면, 우리나라 마라톤이 다시 한번 전성기를 찾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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