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기 52
2024년 연말은 우울한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새해가 밝았지만 무거운 몸과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 착잡한 뉴스가 더해지면서, 갑자기 우리 곁을 아쉽게 떠난 러너들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출중한 실력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또는 그렇게 예상되었던 이들이 생각났다. 지금은 워낙 많은 뉴스들이 범람하다 보니 누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덤덤하게 지나지만, 인터넷이 활발하기 전 시대에 스포츠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커다란 관심사였다. 특히, 멀쩡하던 그들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이들은 누가 있었을까?
'88 서울올림픽'에서의 가장 빅뉴스는 '벤 존슨 약물복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미국의 육상 여자 단거리 선수인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였다. 일단 그녀를 보면 '왜' 주목받았는지는 단번에 알 수 있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액세서리는 옆 라인의 선수들에 비해 그녀를 확연하게 돋보이게 한다. 이런 그녀에게 사람들은 '달리는 패션모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한 100m 대표선수 선발전에 10.49의 세계 신기록을 거두면서 겉만 화려한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올림픽이 열린 잠실 주 경기장에서 100m, 200m(21.34)그리고 400m 계주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600m 계주에서는 은메달을 더 획득했다. 완벽한 그녀의 무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꾸준히 육상경기에 출전하지 않다가 갑자기 나와서 월등한 성적을 올린 그녀에게 끊임없이 구설수가 따라다녔다. 특히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의혹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녀가 세운 100m 10초 49, 200m 21초 34의 기록은 당시 세계기록이었으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육상 기술과 선수들의 신체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약물에 대한 의혹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런 의혹에 더욱 궁금증을 더하듯이 그녀는 39세의 나이인 1998년에 뇌전증성 혈관종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망한 원인도 약물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며 끝까지 그녀를 괴롭혔는데. 불멸의 세계기록을 보유한 그녀도 깨끗하지 못한 과정이 죽는 순간까지도 삶의 큰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에티오피아의 영웅', '맨발의 마라토너'로 불리는 아베베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2회 연속 마라톤 우승을 일군 선수였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투혼을 발휘해 2시간 15분 16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4년 후 도쿄올림픽에서는 운동화를 신고 달려서 2시간 12분 11초로 또다시 금메달을 획득했다. 두 기록 모두 세계 신기록이었다. 이후 1966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서울 수복 기념 마라톤대회'에 출전해서 2시간 17분 4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하기도 했다(그는 한국전쟁에도 참전했고, 우리나라에 대한 의리로 이 대회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 대회가 그의 풀코스 마지막 경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마라톤의 영웅이었던 그는 1969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근교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였고, 장애인 양궁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교통사고에 이어지는 후유증이 계속되었고 결국 1973년, 41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또다시 교통사고다. 25세의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인 켈빈 킵툼이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위대한 마라토너' 킵초게가 아닌, 그를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라고 단정하는 것에는 근거가 있다. 켈빈 킵툼은 단 세 번의 공식 마라톤 풀코스를 세 번 출전했다. 그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2022년 발렌시아 마라톤대회: 2시간 1분 53초(첫 출전, 역대 3번째 2시간 1분대 기록)
2023년 런던 마라톤대회: 2시간 1분 25초(역대 2위 기록)
2023년 시카고 마라톤대회: 2시간 35초(역대 1위 기록, 최초 2시간 0분대 기록)
세계 마라톤 관계자와 팬들은 흥분했다. 그리고 기대했다. 드디어 그가 2시간의 벽을 깨뜨려줄 것이라고. 이제 20대 초반의 그였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킵초게도 못했던 대기록을 그가 이루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너무도 뜻밖의 사고 소식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2024년 2월 11일, 마라톤 훈련을 위해 이동하던 그와 그의 코치(제르베 하키지마나)는 차량 사고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참, 허망하다. 그의 나이 고작 25살이었다.
거침없이 달리던 그에게 얼마나 멋진 미래가 기대되었을까. 그를 바라보는 가족과 주변인들은 그가 세계 최고의 기록을 세우고 높은 곳에 서는 그의 모습을 얼마나 꿈꿨을까? 하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마라톤은 또다시, 조용히, 1보 후퇴를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주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일이 생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포츠와 육상계도 종종 그런 일들이 있다. 위에 이야기한 이들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도 전에 하늘의 별이 되곤 했다. 많은 선수들이 훌륭한 성적을 올리고, 오래오래 살면서 영광과 찬사를 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불멸의 기록을 통해 인류의 가슴과 기억에 깊은 감동을 남기고 간 그들의 모습에서는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이 더하다. 힘들게 달리며 자신의 인생을 바꾸려했던 이들을 보면 더 그렇다. 그렇게 빨리 떠난 러너(runner)들은 저 하늘 어딘가에서 계속 달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아쉬움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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