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성공법칙 10
- 그녀는 1880년 미국 앨라베마 주에서 유복한 집의 딸로 태어났다.
- 그녀는 16살에 하버드 대학교 부설 래드클리프 대학을 입학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여학교에 입학했다.
- 20살에 래드클리프 대학에 입학했고 4년 후 '전 과정을 수료했으며 특히 영문학이 우수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졸업했다.
- 재학 중에 자서전 성격의 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연재하고 단행본으로도 발행하였으며, 에세이 <낙관주의: 한 편의 에세이>를 이어 출간하였다.
- 졸업 후에는 <내가 사는 세상>, <돌담의 노래> 등의 책을 연이어 출간했으며,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강연을 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을 주제로 미국 전역에서 강연을 이어갔다.
- 38살에는 자신의 삶을 주제로 만든 영화 <해방>에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했다.
- <돌담의 노래>, <어둠을 벗어나> 등 꾸준히 저술활동을 이어갔으며, 49살에는 자신의 두 번째 자서전 <인생의 중반에 이르러: 나의 최근의 삶>을 출간했다.
- 51살에 이르러 템플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그 이듬해에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57살에는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 <황혼의 평화>, < 믿음을 가지자>, <비망록> 등 집필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갔으며, 62살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부상병 구제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 그녀는 미국 사회당원으로서 '여성 참정권 운동', '사형 폐지 운동', '아동 노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명망 높은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
- 84살에는 미국 최고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고, 그 이듬해에는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쉼 없는 집필과 사회활동을 이어온 그녀는 1968년 6월 1일에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후 19개월에 그녀는 심하게 아팠다. 이후에 그것이 성홍열과 뇌막염이 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시각과 청각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어린 나이에 얻은 중증 청각장애로 그녀는 말하는 법도 터득하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삼중고(三重苦)를 평생 안고 살았다. 수화를 통해 가족과 소수의 친구들과 대화를 했지만 몸과 마음이 성장하며 커가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8살에 만난 설리번 선생님(Anne Sullivan Macy)은 평생의 스승이자 동반자가 되었고, 세상에 대한 그녀의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1살부터는 말하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에 엄청난 관심과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난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수화를 사용하고 (입술을 읽는) 독순술을 이용해 세상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한계는 뚜렷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책과 자연을 사랑한 그녀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받아들였다. 설리번 선생님을 비롯하여 자신을 도와주려는 이들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서 대학도 입학했다. 손으로 강의를 듣고(?) 필기도 해야 했다. 머리는 생각을 해야 하고 궁금하지만 제때에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단어와 문장을 문법과 원리로 가르치는 교육에도 거부감이 컸다. 남들만큼 따라가기 힘들다는 자책감이 커져갔다. '일등 도깨비'라고까지 표현한 시험을 치르는 날이면 자신을 깊은 바다에 처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까지 무너졌다. 그래도 이겨냈다.
이렇게 천형天刑과 같은 고통에도 그녀는 원망하거나 포기하기 않았다. 그녀는 단지 역경을 이겨낸 인생의 승리자를 넘어 20세기 초반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운동가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삶에 주어진 불리함을 무릅쓰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세상과의 소통에 성공했다. 그녀의 이름은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이다.
실패하는 우리는 힘듦을 피하고 어려움에서 벗어나려 고민한다.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희망'보다는 '포기'를 먹으려 손을 뻗곤 한다. 상황을 피해 달아날 이유 속에 나를 숨기고 '되는 이유'보다 '안 되는 핑계'로 가리고 가리고 또 가리려 하고 있다.
이런 얘기도 한다. '나도 부모를 잘 만났다면', '내가 그 시험에 떨어지지만 않았다면', '내가 그때 그 사건만 겪지 않았다면'. 내가 처한 상황의 책임이 남에게 있다고 외친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가?
보지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20개월 된 아이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인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암흑의 날 속에서 끝없이 닥쳐오는 불안과 공포만큼 우리의 형편이 고통스러운가?
그녀는 다른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훌륭한 선생님과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다고 또 비교할 건가? 두 번의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 등 1900년대 초의 혼란스러운 미국에서 살았던 그녀와 인터넷과 AI 등으로 둘러싸인 정보의 홍수와 기회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 중 누가 더 우월한 환경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일어나 또 나아가자.
시각이란 선물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답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럼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 소리와 새의 지저귐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십시오.(중략)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헬렌 켈러의 '내가 만일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