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띵선생 May 09. 2024

아직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

라라크루 1-3

나이가 반백을 넘기며 이제는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눈이 생겼다고 여기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 


비단,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집어 들지 않더라도 무리하고 욕심을 내는 것은 결국 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욕심이 나를 더욱 새롭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포기하는 용기보다 더 단련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새벽의 동트기 전 어둠은 나를 침착하게 만든다. 

첫 차를 타고 출근하는 습관이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출근길 부대낌이 싫어서 이른 출근을 선택했고, 그 한적한 대중교통 안에서 가질 수 있는 나만의 시간도 흡족했다. 그보다 더 첫 차 출근을 끊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해가 뜨기 전에 어둠을 가르는 그 시간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는 경쟁심보다는, 아침 기상 전의 지구에 대한 동조감이다. 침착함 속에 찾아오는 나만의 루틴으로 그 어둠을 한 발자국 씩 밝혀나간다. 그렇게 결국 새벽은 열리고 나의 하루도 시작된다. 새벽과 하루가 함께 열리는 날마다 새로운 그 과정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침 기상과 함께 나의 텅 빈 위장은 정오까지 H2O로 그 허기감을 달랜다. 

전날 저녁식사 이후로부터 이어진 공복을 16시간 유지한다. 이 간헐적 단식이 주는 신체적 효과는 여러 자료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이를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이유는 한없이 가벼워지는 마음의 무게 때문이다. 공복감이 주는 편안함은 허기짐을 고통스럽게 보내는 이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 상대적으로 위장을 채우는 나머지 8시간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줄여준다. 텅 빈 장에서 물이 내려가는 소리나 '꼬르륵'하며 연동운동을 하는 소리는 묘한 성취감도 준다. 나 혼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성취.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일은 이제 아주 독특한 행동으로 취급받는다.

책이라는 지식과 지혜의 전달자를 찾고 읽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이 시기에, 지하철에서 그것을 펼치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 되었다. 빽빽하면 빽빽한 대로, 한산하면 한산한 대로 사람들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활동을 한다. 대부분은 휴대폰에 빠져 있다. 나 역시 휴대폰 속의 세상에서 각종 유혹을 받는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는 순간 주변을 돌아보면, '앗! 책을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라고 파악이 되는 즉시, 나는 가방 속의 책을 꺼낸다. 이 역시 나만의 성취감이다. 또는, 간혹,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는 차를 타게 되면, '질 수 없지'라는 경쟁심에 책을 꺼내 읽게 된다. 남들이 하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는 우월감보다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평균 지하철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인데, 그 시간을 '신세대 바보상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다. 나만 그런가?


지금이 이 마음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내 마음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열심히 살아야 할 힘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새롭게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서도 말이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작가의 이전글 거짓말은 거짓말로 받아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