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7일의 끄적임
결혼 준비를 할때만해도, 전세에 살자, 집을 사자 등의 의견을 종종 나누곤 했지만, 남편과 나 모두 "집을 꼭 사야한다!"라는 의식은 강하지 않았어서, 자연스럽게 전세집에 살게되었다.
하지만, 임신 이후, 어린 아이를 데리고 2년마다 이사를 다니는것이 얼마나 고단할까를 생각해보니, 남편과 나의 마음에는 "집을 꼭 사야한다!"라는 의식이 자라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때는 집값이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라는 기사들이 넘쳐나던 시기여서 마음에 조급함이 일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데이트한다는 명목으로, 이동네 저동네, 보다 정확히 이야기를 하면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구경하면서 소위 말하는 "임장"을 했다.
뚜벅이로 걸어다녀야 그 동네를 잘 알수 있다는 판단하에, 셀 수 없이 많은 동네들을 무지막지 하게 걸어다녔다. 서로의 직장 위치를 고려해서 지하철이 닿는곳이라면 어디라도 갔다. 저녁을 먹고 배가 넉넉해지면 "OO역"으로 산책이나 다녀올까? 라고 했었으니깐!
우리는 내 집 마련에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남편과 나의 "임장" 공통점이 있다면, 처음 시작할때는 화이팅이 있고 의욕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항상 마음이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호기롭게 갔다가 집값을 보고 시무룩해져서 돌아오는 꼴이랄까-
먼 발치에서만 보던 부동산의 가격은, 가까이서 보니, 예상보다 더 한 자본주의 끝판왕이었다. 이유없이 비싸거나, 싼 곳은 없다. 각 집의 장점과 단점이 부동산에 무서울 정도로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지역, 학교 수준, 지하철 및 버스 정류장과의 거리, 학교 및 마트와의 거리, 같은 아파트 단지라도, 동에 따라 층에 따라 무조건 가격이 달랐으니 말이다.
우리 둘만의 경험만으로는 의사결정에 자신이 없기도해서 양가 부모님들의 조건을 하나둘씩 더하다보니 배가 산으로 갔다. "~해야만 한다" "~는 절대 안된다"라는 조건들이 붙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올라다가 보니, 남편과 나의 예산이 한없이 작아보이며, 작은 예산을 모으기 위한 우리의 노력들도 한없이 작아보였다.
집구하기에 몰입하고 있을 그때, 신문, 방송에는 연일 부동산 오름세로 인해 이득을 본 사람, 손해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스로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남편과 함께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이 났다.
"오빠, 그냥 나는 우리 가족이 살 집을 하나 가지고 싶었던거 뿐인데, 그게 그렇게 욕심이고, 잘못된 일이야? 뭐가 이렇게 힘든거지? 내가 엄청나게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자나, 생존이자나"
짚신도 짝이 있듯, 집도 내집이 있고, 내집이 아닌게 있다는 부동산 속설처럼, 두어번의 집계약이 어그러진 후에야 드디어 매매계약을 했다. 인생은 등기를 치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던가! 집 계약 후, 늦은 시간 편의점 앞에서 삼각김밥을 우걱우걱 먹으며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이제 진짜 아프면 안돼!"
드뎌 집을 얻었다는 안도감을 생겼지만, 그만큼 큰 부담을 떠안았기에 가지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도 두려움 보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는 것에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고, 우리의 관계가 룸메이트에서 전우로 바뀌어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집을 매매하던 시기와 다르게, 최근 신문, 방송에는 연일 부동산 내림세로 인해 희비가 교차하는 사람들, 사연들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런 정보들을 접하게 되면, 사람인지라 어쩔수 없이, 그때의 나의 선택에 대해 다시 한번 복기하게 된다.
열심히 복기를 해보다가, 더 우울해 질것 같아서, 칠판 지우개로 칠판을 지우듯, 머리속을 깨끗이 비우며, 남아있는 사실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우리에겐 집이 있다는 사실,
우리 가족 모두가 그 집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하루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언젠가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불안함 보다는 언젠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는 사실,
내 집 마련 실현의 동기가 되어준 지원이와 배속에 아가가 있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 배짱이 생긴다.
이미 샀는데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