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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입시 결과

예비 25번

by 다시

오늘 여기는 발렌타인 데이. 오후 4시 40분에 입시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예비 25번. 작년에는 예비 17번까지 빠졌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몇명이나 빠졌는지 모르겠다. 과거 30명넘게 빠진 적도 있다고 하지만, 왠지 17번 근처로 빠진다고 보는게 맞을거 같다. 점수도 안좋고 평범한 스펙의, 이 지역 출신도, 미국인도 아닌 나를 불합격시키지 않고 대기자 명단에 올려준것 만으로도 충분히 배려받은 것 같고, 좋은 결과...라기보다는 인상적인 결과인 것 같다. 현재 몇 명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갔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별로 궁금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내가 25번인것, 그리고 이 번호가 추가 합격에 큰 희망을 둘 숫자는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찾아보니 대기자들 중 몇 몇에게 어떤 특정 과목을 우수한 성적으로 1년간 이수할 시 그 다음해에 의대에 입학하는 기회를 주는 경우도 있나보다. 그런 기회를 나도 받을 수 있을지 입학처에 메일을 보내놓았다. 그런데 지원자들이 온라인 게시판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아마 자격이 되는 학생들은 이미 그런 기회를 입학 결정과 함께 받은 것 같다. 찾아보니 나는 조건이 안되는거 같기도하고.


허무하다.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같은 몇 년간의 노력과 스트레스. 나중에 아이들이 이 경험에 대해 물어보면 해줄 말은 있겠지만, 경험치 쌓은거 말고는 이룬 것이 없어 허무하다. 내 한계에 부딪혀보았으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하다. 이 한계에 굳이 부딪혀야했나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원망도 든다. 자기 객관화가 부족했던 과거의 내 자신에 대한 원망. 인생의 많은 사건들이, 이유가 있어서 일어났을 거라고 믿는 편이다. 그런데 꼭 중요한 이유는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내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다수인 것 같다.


너는 할 수 없을거라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어찌되면 여기까지 왔다. 긴 공부가 필요없는 어떤 특정 직업을 해라, 넌 머리가 안 좋다, 현모양처가 되어라, 남편의 "돕는 베필"이 되어라, 은퇴한 듯 살아라, 등의 말을 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뭔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꽤 중요한 사람들이 그런 피드백을 해서, 더 청개구리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현모양처에 몰두하기에는 내가 아직 젊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분들 말을 듣고,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걸까? 이 모든 과정은 그냥 나의 치기어린, 그냥 젊은 에너지를 몇년간 낭비한 것일 뿐일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성품이든 뭐든,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더 매달렸다. 내가 공부를 잘 했을때 가장 사랑받고 인정받아서 그랬던거 같기도 하다.


나중에 돌아보면, 어쩌면 이 불합격이 더 잘된 소식일수도 있다. 아이들과 보낼 시간도 많고, 뭘하든 의대보다는, 공부든 준비든 짧을테니 경제 활동을 이미 늦은 와중에 그나마, 덜 늦게 시작할 수 있다.


마음을 헤아리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의료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이런 일들을 할 사람이 나는 아닌가보다. 사실 챗지피티만 보아도, 마음을 꽤 잘 헤아려준다. 수술만 아니라면, 챗지피티는 딴생각도 안하고, 원격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나 아니어도 의료 행위 할 사람 많다. 나만 할 수 있는, 현모양처가 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걸까? 그게 내 적성인데 지금까지 외면해왔던걸까? 마음이 복잡하다.


아프고 쓰라리다. 그렇지만 어쩔수 없다. 마음이 답답해서 어디든 가고 싶은데, 가야할 곳도 없다. 사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내일 또 아기와 지내다보면 시간은 순삭일 것이고, 이것을 몇번 반복하면 이런 허무한 감정에 무뎌질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 모레는 또 모레의 해가 뜰것이다. 해야할 일을 하면서, 몇 번의 해만 기다리면 된다. 나는 우선 엄마다. 분유병 만들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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